공간적으로 가까이 사는 사람을 이웃이라고 한다. 의도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이웃이 된다. 이웃은 가장 가까운 공간에 살고 있기에 비교적 서로를 잘 안다. 언제 나갔다 들어오는지, 무슨 음식을 먹는지, 싸우는지 등을 소리로, 냄새로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사이가 좋으면 사촌이지만, 갈등이 생기면 원수가 되는 게 이웃이다. 가깝고도 먼 사이인 이웃은 어떻게든 신경이 쓰이는 존재이다. 부딪혀야 하기에 예의를 갖추고 배려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런 예의와 배려, 그리고 적당한 긴장감은 숙명적으로 맞대고 사는 이웃과 공생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관계는 무너진다.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이웃 나라인 만큼 애증이 깊다. 일단 역사적으로 전쟁을 가장 많이 치른 상대가 바로 이웃 나라다. 이웃집과는 잘 지낼 수도 있지만 이웃 나라와 잘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교에서 ‘이웃 나라의 법칙’이 있다. 원교근공(遠交近攻), 멀리 떨어진 나라와 친교 관계를 만들어 위협적인 가까운 나라를 치라는 것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백제나 고구려를 무너뜨린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대체로 세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파키스탄과 인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아랍 주변국들처럼 아예 국교도 단절하고 상시 전쟁 상태를 유지하는 극단적 적대관계이다. 이 경우가 가장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호주와 뉴질랜드, 스위스와 이탈리아, 미국과 캐나다처럼 서로 적대적 악감정 없이 적당한 긴장감으로 유지되는 관계도 있다.
많은 경우는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과 포르투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처럼 서로 사이는 안 좋아도 활발하게 교류와 협력을 해나가고 있다. 새로운 상황과 상대의 대응 정도에 따라서 두 나라 간의 관계는 널뛰기한다. 이미 경제적 사회적으로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악화하면 그 피해가 정말 커진다.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얽힌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 과거사와 영토문제로가 심각하다. 중국과는 미세먼지나 사드 등 환경이나 군사적으로 복잡하다. 그래도 경제교류는 활발해서 기업들은 서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해 왔다. 여행객들이 서로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이 혼란스럽다. 이 가운데에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정말 의료선진국답게 적극적이고 투명하다. 그러나 단순 수치만 가지고 입국을 거부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어 안타깝다. 먼 나라들이야 상황을 잘 모르니 그렇다 치더라도 뻔히 알고 있는 이웃 나라의 행태는 괘씸하기 그지없다.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자국민 보호나 안보라고 포장해 자신의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위정자들의 결정은 서로 피해를 가중할 뿐만 아니라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작년 7월 일본 아베 내각의 경제 제재로 양국이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데, 여기에 코로나19를 빌미로 입국을 거부함으로써 갈등의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있다.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의 관계라면 적절한 긴장감 속에서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국이 코로나로 심각할 때 우리 정부가 마스크를 보낸 것처럼 어려움을 함께 풀어내려는 예의와 배려만이 발전의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