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驚蟄)이 지났습니다. 삼천, 징검돌을 빠져나가는 물소리가 사뭇 소란합니다. 냇가 왕버들에도 슬며시 연초록이 묻어있고요. 멀리 흐릿하던 모악산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아버지 옛 말씀처럼 담배 한 대 참이면 가닿을 성싶네요. 중인리 논둑길을 걷습니다. 나물 캐는 이들이 여럿입니다. 저녁 식탁엔 상큼한 봄 내음 넘치겠지요. 미나리꽝 못미처 개울을 건넙니다. 밥풀떼기만 한 봄까치꽃이 한창이네요. 짝짓는 개구리도 보이고요. 두어 배미 건너 보리밭도 푸름입니다. 종다리는 아직이지만, 작년 보리피리 소리 귓전을 맴돕니다. 봄 춘(春) 자는 풀 초(艸) 밑에 싹 나올 둔(芚)을 놓고 해 일(日)을 받친 글자입니다. 봄이 오니 햇볕이 따뜻해져 초목에 싹이 움트는 것이지요. 꽃을 피우고 알을 품는 것이지요. 조붓한 논둑길을 봄 봄 갑니다.
움트는 버들 사이로 징검다리를 건넙니다. 두꺼운 외투는 못 벗었지만 걸음 한결 가볍습니다. “봄은 볼 게 많아서 봄/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봄”(박노해, <내 인생의 모든 계절> ) 이라지요.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