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헌수 시인 - 진현정 동시집 ‘심심한 시간을 꿀꺽’

시간도, 바람도 꼭꼭 씹어서 넘기고 싶은 맛깔스런 동시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들의 이야기에 기대어 동시를 써 내려가는 일은 즐겁다.

어디론가 빠르게 기어가는 개미떼를 지켜보고, 문방구 앞에 모여서 오락기를 돌리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재활용 쓰레기장을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어보기도 한다.

식탁위에 놓인 찬밥에 핀 곰팡이 꽃과, 실외기에 둥지를 튼 비둘기를 들여다보며,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 꽃향기를 맡아보기도 한다.

봄의 기운 같은 노래이기도 하고, 때론 어긋난 리듬처럼 달아나기도 하는 동시,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며 동시 곁으로 가는 일은 행복하다.

글을 쓰는 일은 대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그녀,

영광과 전주를 오가며 함께하는 글동무,

진현정 시인의 첫 동시집 <심심한 시간을 꿀꺽> 을 펼쳐보았다.

생기발랄한 그녀가 톡톡 풀어 쓴 동시집에서 주변의 평범한 일상을 만날 수 있었다.

흔한 주변의 사물이 그녀의 눈매 따라 미끄러지듯 파고든다. 마음의 구석구석을 울리는 힘이 느껴지고, 덩달아 즐거워진다.

소나무 꽃이 노란캡슐을 터뜨려 봄을 밀고 가는 애벌레에게 기운을 전해주는 <꽃가루약> ,

풀르풀르 떨리는 진달래 꽃잎처럼 그 애를 향한 마음의 떨림을 이야기 한 <바람불면> , 가을 숲속 오르막길에서 쏟아지는 도토리를 <도토리 숲 해설사> 로 노래하고, 아무도 모르게 집을 지키는 <작전명 1호> 를 들을 수 있다. <천왕성 알사탕> 을 굴려보고, 또-옥 쪼-옥 따먹는 <포도씨의 꿀꺽인생> 을 만날 수 있다. 밤새 편의점에서 일한 누나와 대리 운전하는 아빠, 엄마 없이 혼자 있는 아이의 시간을 다정하게 끌어다 놓았다.

<엄마 없는 날> 에는 출장 간 엄마가 끓여 놓고 간 곰탕이 나온다. 큰 찜통에 끓여놓고 며칠을 먹었던 곰탕, 뽁뽀글 다글다글 소리를 내며 찜통 속을 드나들던 수증기거인과 뼈다귀 거인이 보인다. 입말의 리듬을 느낄 수 있는 시다.

그녀는 아이들의 마음결을 잘 어루만지는 것 같다. 함께 오도독 깨물며 삼키는 관계를 통해 마음 한 자락이 단단하게 세워질 것 같으니 말이다.

꿀꺽이라는 부사가 전해주는 진현정의 동시집 한 그릇을 천천히 들이켜본다.

시간도, 바람도 꼭꼭 씹어서 넘기고 싶은, 힘이 나는 맛깔스런 동시집이다.

뭉근한 호흡으로 오랫동안 글의 뼈대를 세우고, 발상과 감각이 신선한 그녀의 동시가 이 봄에 더욱 싱그럽고 환해지기를 바래본다.

 

* 김헌수 시인은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삼례터미널’로 등단했다. 우석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전북작가회의 회원, 동시창작 모임 ‘동시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