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Digilog)’는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라는 상반되는 의미를 지닌 두 개념을 결합한 혼성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상현실과 현실 등 정보기술과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한 신개념으로, 지난 2006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주창했다.
‘디지로그’는 코로나19가 몰고 온 ‘언택트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답은 ‘그렇다’에 가까워 보인다.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번진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각 분야에서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문화예술계에 ‘언택트 콘텐츠’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 그러나 전북 문화예술계는 이에 대해 망설이고 있는 모습이다.
“장르별 특성 달라” 온라인화 신중·회의론
“직접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작품이 만났을 때 전달되는 웅장한 에너지가 있지만, 모니터를 통한 일방적인 전달에는 이러한 에너지가 담기지 않습니다.”
공연·전시의 온라인 콘텐츠화를 놓고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아우라 붕괴’다.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문화예술 작품의 ‘아우라(Aura, 예술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가 훼손되면서, 작품의 가치뿐만 아니라 관객의 감동 또한 줄어든다는 것.
특히 게임, 만화, 영화, 애니, 음악 등과 다르게 연극, 뮤지컬, 연주회, 미술 등은 장르 특성상 온라인화될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라북도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최용석 원장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현장감과 체험감이 장르마다 다르다. 그래서 콘텐츠가 온라인에 더 좋을지 오프라인에 더 좋을지 장르별로 나뉘어 있다”며 무조건적인 온라인화는 ‘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공연·전시 예술을 온라인 콘텐츠화할 경우 예술 주체들의 직접적인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최용석 원장은 “로컬 엔터텐인먼트는 입장권을 팔아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데, 온라인 콘텐츠가 유통되면 사람들의 궁금증이 떨어진다. 1년, 2년 준비한 공연을 온라인 콘텐츠로 만들었다가는 오프라인 관객이 감소하고 흥행에 실패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온라인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해 돈을 내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아 콘텐츠 불법 복제·유통의 위험도 있다고 봤다.
일부 문화예술인들 사이에는 온라인 콘텐츠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단순한 공연·전시 영상을 만들어 온라인 플랫폼에 올린다고 해서, 효과가 있겠는가”, “과연 사람들이 보겠는가” 등. 콘텐츠 유통 창구가 넘쳐나는 ‘플랫폼 과잉시대’에 과연 수요가 있을 것이냐는 의문이다.
또한 지역 문화예술 주체들이 콘텐츠를 온라인화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전문인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황도 진입장벽 중 하나다.
전북도립국악원이나 전북도립미술관 등 전북도 산하 기관이 자체적으로 촬영 장비나 중계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인데, 민간 단체와 공연·전시 주체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더욱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함께 위기 극복” 단계적 지원 정책 마련 과제
우리는 ‘초연결(hyper-connected) 시대’에 살고 있다. ‘초연결’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네트워크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사회로 ‘제4차 산업혁명의 특징’ 중 하나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데, 그만큼 온라인 콘텐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임을 가늠할 수 있다.
특히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중요시되고 있고, 언제 종식될 수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나 상황 속에서, 앞으로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용석 원장은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비대면 서비스, 온라인 서비스, 언택트 서비스가 활성화될 것이다”며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도 이런 방향성을 고려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중해야 하고 마주해야 할 어려움이 많지만, 공연·전시 온라인 콘텐츠화를 고민해야 할 당위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지역 문화예술 주체들의 온라인 콘텐츠화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문화예술인들이 온라인 콘텐츠를 서비스할 수 있도록, 정책 기관이 큰 그림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한발짝 한발짝 나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하는 문화예술 주체들이 예산이 없어 구체화하지 못하는 사례가 없도록, 장기적 지원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
단기적으로는, 전북도가 “코로나19 장기화 조짐에 따라, 정책화가 가능한 사업에 대해 2회 추경에 추가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만큼, 문화예술 주체들이 관련 정책 제안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또한 전북문화관광재단과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등 전북도 산하기관 간의 협업이나 산학협력도 온라인 콘텐츠화의 한 방법론으로 거론된다.
이와 관련 전북문화관광재단 관계자는 “문화예술 온라인콘텐츠 지원 사업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공연·전시를 어떻게 온라인에 탑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전했다.
세부적으로는, 코로나19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온라인 공연·전시도 오프라인 공연·전시와 같이 ‘실적으로 인정’해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연·전시 티켓 수입을 낼 수 없더라도, 일부 지원·후원금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을 막자는 것. 추후 각종 지원사업 평가에서 온라인 공연·전시에 대한 가산점 부여도 고려할 수 있다.
이밖에 공연연습 장면 등 맛보기 영상이나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거친 영상을 제공해 잠재적 관객의 궁금증을 높이는 전략적 선택도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가 생존할 수 있고 주민 문화향유의 기회를 넓힐 수 있도록, 언택트 콘텐츠를 함께 고민하고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