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곡우(穀雨)도 지났건만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봄이 왔어도 봄 같지가 않다. 게다가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가 코로나19라는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경제적·정치적으로 많은 피해와 혼란을 겪고 있어 봄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지경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가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유독 농업분야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화훼농가와 친환경농산물 생산농가, 우유 생산농가의 시름이 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상 저온으로 인해 사과, 배, 복숭아 등 과일나무에 발생한 냉해 피해는 농업인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내고 있다. 여전히 우리 농업인의 시간은 지난해 겨울 속에 멈춰 서 있다.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농촌에서는 많은 농가들이 일손을 구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4월까지는 그럭저럭 꾸려 간다고 하지만 5월부터 이어지는 과일나무의 열매솎기, 모내기, 양파·마늘 수확, 고추·고구마의 모종이나 종순 식재 작업이 당장 걱정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속담이 농업인의 마음 일 것이다.
농촌의 고령화와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 등으로 농촌의 인력 수급이 좋지 않은 것이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해는 어느 해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 농번기 일손 부족 완화에 보탬이 됐던 외국인 계절근로자마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하늘길이 막혀 국내에 전혀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전북의 경우 이러한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250여명에 이른다. 더구나 코로나 19로 인한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 도 농촌 인력 수급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에 따라 지난해 7만~8만원이었던 일당이 올해 들어 30% 가량 대폭 상승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일하기 전에 일당을 미리 지급하는 ‘선불제’까지 등장했다.
농촌 일손 부족으로 인한 피해는 단순히 농업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농촌이 활력을 잃고 농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 이는 농업이 지니고 있는 공익적 가치의 훼손으로 이어져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모두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식량을 공급하는 기능 외에도 환경보전, 농촌경관 제공, 농촌 활력 제고, 전통문화 유지, 식량안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의 세계적인 대유행에 따른 위기감으로 ‘식량안보’가 대두되고 지금의 현실을 감안해 볼 때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로 세계 3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이 지난달 24일 쌀 수출을 금지했고, 캄보디아가 이 달 5일 쌀 수출을 중단했다. 베트남은 최근 쌀 수출을 재개했지만 수출량 조절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러시아는 지난 달 20일 밀과 쌀, 보리 등 모든 곡물에 대한 수출을 막았고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등도 주요 작물의 수출을 금지했다.
굳건한 식량안보의 기본적인 전제 조건은 농산물의 원활한 생산이며, 원활한 생산을 위해서는 적절한 인력수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북도와 농협 등 여러 기관들이 고질적인 농촌의 인력문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계도 인정한 대한민국만의 저력이 있다. 코로나19를 대처하며 보여준 성숙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아직도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는 농촌과 농업인을 위해 모두 함께 일손 돕기에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박성일 전북농협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