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여는 시] 늙은 이발사의 기도 - 이내빈

은빛 가위가 미친 듯이 춤을 추면

꼿꼿하게 버티던

검은 체온이 가차 없이 잘려 나간다

마치 목을 꺾는 동백처럼

대리석 바닥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엄지와 중지에 걸터앉은

시퍼렇게 날이 선 가윗날

날렵하다 못해 비상하는

한 마리 학처럼 우아하다

이발사의 빛나는 가위 손은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신들린 듯 굿판을 벌이고

주인을 떠난 머리카락은

주검이 되어 바람을 탄다

짐짓 고요가 허우적대면

하얀 가운이 가부좌를 틀고

혼백을 이별하는

늙은 이발사의 기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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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머리카락이 늙은 이발사의 가윗날에 잘려 나간다. 학처럼 우아한 가위질은 검은 체온을 가차 없이 잘라낸다. 이발관에 손님이 끊기는 시간이면, 하얀 가운을 입은 채 고요 속에서 가부좌를 트는 늙은 이발사가 있다. 주검으로 돌아간 검은 체온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늙은 이발사가 우리 동네에 있었다. 기도를 게을리하는 지 이발관과 이발사가 사라져 가고 있다.  /김제김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