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의 '미술 인문학'] 누더기 옷에 고장난 시계, 중광

중광이 천상병 시인을 기리며 그린 드로잉.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이슬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리라.”시 ‘귀천’을 쓴 시인 천상병은 희대의 기인으로 알려진 중광스님을 봤을 때의 인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비록 누더기 옷을 걸치고 가슴에 고장난 시계, 머리에 쓴 모자에 울긋불긋 달린 장식들, 그 모습이 우습다고 보이지만 어느 곳이든 어느 하늘 아래를 활보한들 떳떳한 그 모습, 그 웃음 앞에는 누가 말할 자 있을까? 스님과 나는 언제나 서로가 형님과 도사가 엇갈리는 대화가 있을망정 마음 속으로 보살님이니 우린 언제나 만나면 반가운 것이다.”

반대로 중광은 천상병 사후 낸 책에서 그를 이렇게 기리고 있다.

“천상병 시인은 자식도 하나 없고/ 이렇다 할 재산도 없어도/ 맥주값 500원이면 이 세상을 넉넉하게 살다 가신 도인이었다.”

내가 아는 중광은 세상을 걸림 없이 통 크고 멋지게 살다 가신 도인, 예술가였다. 미국의 불교학자 랭커스터 교수가 그를 발견하고 ‘미친 중’이라는 책을 펴내 그의 선 사상과 예술을 소개하자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종로의 감로암 그의 거처는 벽과 천정까지 낙서 투성이였는데 술이 취해 귀가를 하려 대문을 나서자 나를 불러 세우더니 바로 달마도 한 점을 달빛에 비추며 깔깔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머리에 성기를 달고 있는 달마였는데 전남대 발전 기금으로 내놓았던 작품이다.

이제 중광 스님도 가신지 18년이 된다. 그가 생전에 썼던 시 <허튼 소리·3> 을 보면, “우리집 개는 불교를 믿고/ 우리집 고양이는 예수교를 믿고/ 우리집 향나무는 유교를 믿고/ 우리집 우물은 무당을 믿고/ 나도 가갸거겨 또 가갸거겨/ 너도 가갸거겨 또 가갸거겨”가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가장 통렬하게 열린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글만 쓰지 말라고 물감을 상자에 가득 담아 주시고 전시회 때는 싱글싱글 웃으며 품평을 해주시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천당과 극락을/ 오른쪽 호주머니에/ 가지고 다닌다/ 양심은/ 하늘에 걸어두고/ 이슬처럼 따먹는다”고 노래 했던 그는 임종에 앞서 “나 죽거든 절대 장례식 하지 마라. 가마니에 둘둘 말아 새와 들짐승이 먹게 하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렇게 떠나지 못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