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정경 시인 - 김한민 그래픽 노블 '책섬'

책으로 만든 섬, 섬으로 만든 책…나는 책섬에 가고 싶다

스스로 여러 이름을 만들어 활동한 작가가 있다. 그가 사용한 이름은 무려 120여 개. 그 이름마다 결이 다른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포르투갈의 천재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얘기. 이 신비로운 작가를 내게 소개해준 이는 만화가 김한민이다.

어느 날 훌쩍 포르투갈로 떠난 그는 그곳에서 페소아의 작품을 연구했고, 최근까지 페소아의 시집 3권과 산문집 1권을 번역했다. 김한민 역시 수많은 영혼을 가진 페소아를 닮았다. 작가이자 한 해양동물보호단체의 활동가이며, <아무튼 비건> 을 통해 비건(완전한 채식주의자)의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나와 동년배인 이 재주 많은 작가가 부럽다 못해 미워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마냥 질투만 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지은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 <책섬> 때문이다.

구구절절 이야기가 장황하였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책섬> 이 바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 때문. ‘책섬’에는 책 짓는 노인 한 명이 살고 있다. “책이 쇠락하는 시대에 책 만드는 사람으로 태어난” 노인은 말년에 자신의 책 짓는 기술을 전수받을 제자를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만난 제자는 하필이면 책병에 걸린 아이. 방문부터 장롱, 냉장고, 심지어 벽에 걸린 스위치까지 펼쳐지는 것은 무엇이든 책으로 보이는 기이한 병에 걸린 어린 제자와 노인은 무사히 책을 만들 수 있을까?

한 권의 책이 독자의 손에 닿기까지 그 과정이 어찌 순탄하기만 하겠는가. 책 짓는 노인은 “이 결투는 처음부터 불리한 게임”이라고 말한다. “쓰지 말 이유는 수만 가진데, 써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 문제투성이 결투를 유리하게 만드는 그만의 방법은 직면하기이다. “끝없는 직면”. 문제가 나한테 질려버릴 때까지 버티는 것. 이것은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난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리라. 회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진득하니 견디며 우리는 많은 일을 헤쳐 나왔다.

노인과 어린 제자가 책으로 만든 섬, 섬으로 만든 책, ‘책섬’을 완성한 날. 노인은 제자를 ‘책섬’에 실어 보낸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암시하며 책은 끝이 난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이야기가 대개 그런 것처럼 이 책의 주인공 앞에도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얄궂게도 고군분투하며 그 문제를 돌파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독자에게 짜릿함을 선사한다. 책장마다 글과 그림이 구별 없이 한데 섞여 뛰노는 <책섬> . 그야말로 자유로운 공간으로, 여백이 넉넉하여 빈 곳에는 독자가 자신만의 질문과 사색을 채워 넣기에 좋다. 책 속에서 페르난두 페소아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 김정경 시인은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검은 줄’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골목의 날씨>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