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가 전쟁을 경험한 것과 맞먹을 정도로 엄청한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교통사고를 비롯한 일반 외상 경험과 달리 자아 방어능력 전체를 교란할 만큼 후유증이 큰 데다 상처도 오래 남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 조사에 참여한 피해자 가운데 끔찍한 경험을 겪은 지 2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치료를 받는다고 해 성범죄의 해악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단국대병원과 충남해바라기센터 연구팀이 공동으로 성폭력 피해자 40명과 일반인 83명의 임상특성을 비교분석한 결과다. 연구팀은 또 “성범죄 피해자의 심리적 불안감은 급성기라기보다는 지속해서 만성화돼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같은 사례를 보더라도 성범죄 피해자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감안하면 2차 피해 예방의 최우선 조치는 가해자와의 분리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 최근 전주시내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여중생에게 음란물을 보낸 성범죄 사건이 대표적이다. 가해 학생과 피해자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도록 함으로써 피해자 학부모가 반발, 청와대 청원까지 올리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더욱이 사건 이후 이 학부모는 학교측에 가해 학생과의 분리가 필요하다며 전학을 요구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그런데다 학교폭력전담기구에 참여한 일부 위원들의 안이한 현실인식도 도마에 올랐다. 명백한 성폭력 사안임에도 가해 학생을 옹호하고 가벼운 징계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자질논란까지 불거졌다. 이에 일선교사와 전교조 전북지부는 11일 성명을 통해 단순 정학처분 결정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는 등 향후 사태추이가 주목된다.
지난 2018년 인천의 여중생이 성범죄 2차 피해에 시달리다 결국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이 학생은 남학생 친구 2명에게 강간을 당해 5개월 동안 몸서리치는 아픔과 두려움 속에서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가해 학생들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떠들고 다니면서 학교 전체에 소문이 번졌다. 괴로움을 견디다 못한 피해 학생의 선택은 죽음 뿐이었다.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 사건의 교훈은 피해자 입장에서 후속조치를 취하는 것은 물론 가해자와의 분리가 사건해결의 첫 단추임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