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 알았습니다. 세상이 동그란 줄만 알았었습니다. 화암사(花巖寺) 적묵당(寂默堂)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도 땅도 네모란 것을 압니다. 이응, 이응 벌린 입을 미음, 미음 닫아겁니다. 와글거리던 속내가 수굿해집니다.
우화루(雨花樓) 앞 늙은 매화나무 아래에서 주워온 시금털털한 풋 매실 하나 우물거립니다. 꽃비 이미 멎었습니다. 극락전 아미타불도 문 닫아걸고 들어앉으신 지 오래입니다. 입 꾹 다물었습니다. 세상도 시절도 나도 칸, 칸 마루에 나앉아 다뭅니다.
쑥꾹, 쑥꾹 한나절 울어대던 쑥꾹새도 불명산(佛明山) 시루봉 너머로 날아갔습니다. 적묵당 기둥에 기대어 떠가는 흰 구름을 봅니다. 빈 마당을 봅니다. 동그란 줄만 알았던 하늘이, 마당이 네모입니다.
반 평 독방에서 풀려나 한입 두부 베물 듯, 벌린 입을 미음 미음 다뭅니다. 우화루 목어 입 꾹 다물었고요. 문간채 마당귀 모란 정갈하게 꽃을 지웠습니다. 극락전 처마 끝 풍경(風磬)도 쉿, 검지를 입에 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