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여는 시] 유월 전쟁이 남긴 유훈 - 조기호

싸리울 아래

호박씨 한 알 묻어놓고

 

그 넌출 오르다가

아래윗집 아무 쪽이나

 

제 맘 드는 울타리에

열려주면

 

이쪽 건 내 것이고

그편은 네 것이던 게

 

몹쓸 놈의 유월전쟁

휩쓸고 간 뒤

 

너는 넘이 되고

나는 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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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 전쟁 이후 북과 남은 서로 “넘이 되고” “남이 되었다” 이때쯤 “싸리울 아래” 아버지는 삽을 들고 구덩이 속에 호박씨를 심었었다. 어쩌다 이웃집으로 넘어간 탐스러운 호박이 있으면 내 것이 아닌 이웃집 호박으로 양보했었다. 폭격기가 무서워 깊게 파놓은 굴속에 숨어서 꽁보리 주먹밥으로 배고픔을 달랬던 그해 여름이 슬프게 떠오른다. 이쪽저쪽 가릴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은 깊은 산으로 숨었다. 공포에 벌벌 떨었던 6월의 태양은 기억하고 있을 거다. /이소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