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의 '미술 인문학'] 윤경희, 가다

2019년 작 ‘사노라면’

서양화가 윤경희 씨가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3년 간 암 투병을 하면서도 주위에 전연 알리지 않은 본인의 깔끔한(?) 성격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여류화가로서 70년대 중반부터 추상적인 화풍으로 주목을 받아온 그녀는 초기에는 전주에서, 그 후에는 서울에 거주하면서 꾸준히 활동을 전개해왔다. 초기의 화풍은 추상을 추구하면서도 구상이 갖는 폭넓은 환상과 암시를 포용하는 경향을 띠었는데, 이후 추상적 구조 위에 꽃과 나비가 등장하는 고유한 화풍을 추구하였다. 그것은 현대적 감성과 전통이 만나는 장면이기도 하고, 삶의 금쪽 같은 기억과 조형이 예술로서 얽히는 현장이기도 했다.

1970년대 화실에서의 윤경희

70년대 중반 동문 네거리에 있던 그녀의 화실에 조영철 후배와 방문했을 때 좋아하는 커피를 대접하면서 예이츠의 싯귀에 나오는 ‘하늘의 융단’을 화포 위에 깔고 싶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2000년대 초에는 전남대에 강의를 내려오면서 선암사, 송광사, 화엄사 등을 전전하면서 문창살에 조각된 꽃문양 등에 탄복하면서 전통적인 것을 어떻게 형상화할까를 고민하던 기억도 난다.

인생의 만년은 전주에 내려와 작업을 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하던 그녀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기실 주어진 인생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리고 그 뜻을 성취했다는 일이 그리 의미가 있는지 쉽게 단정 짓기도 어렵다. 그러나 인생이 꿈일망정, 그것은 혼돈 속에서도 명백히 깨어 있던 시간이었으며, 자아가 주체적으로 의미 있는 방향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던 과정이었다.

인생은 허망하지만, 그 인생이 의도하던 의미는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는다. 윤경희가 남긴 작품들을 보면서 새삼, 이렇게 고매하고 독립적인 정신을 가진 여성 화가가 저 세상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곳에서도 그녀는 좋아하는 예술적 행위를 하기 위하여 남모르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 것이다. 꽃이 피고 나비가 나는 세계에서 그녀는 그윽한 차향에 취해 있을까? 큰 붓으로 휘적휘적 추상적 화면을 만드는데 골몰해 있을까? 자취 없이 사라진 한 여성 화가를 기억하며, 이름 없는 묘비를 하나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