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날

박인환 논설고문

우리 민족의 주식인 쌀은 오래 전부터 단순한 식량 이상의 의미와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자원이다. 각종 제례(祭禮)에서도 가장 중요한 곡물이었다. 제사에 쓰는 떡, 술, 식혜 등 모든 음식의 주재료가 쌀이었다. 아울러 벼농사는 우리 농촌 공동체 그 자체였다. 일시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모내기와 추수철 등에는 온 마을이 나서 공동작업을 펼쳤다.

쌀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대단했다. 쌀이 주곡으로 자리 잡은 고려시대 이후 모든 재화나 부(富)를 가늠하는 척도나 물가를 측정하는 잣대가 바로 쌀이었다. 천석꾼이니 만석꾼이니 하는 부자 호칭도 쌀이 기준이었다. 화폐 개념으로 통용되면서 쌀은 부동산 등의 거래에서나 급료 기준이 되기도 했다.

주곡이 쌀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아무 때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아니었다. 농지 부족과 생산성이 떨어져 쌀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전 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식량이 떨어지는 봄철이면 해마다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겨야 했다. 1970년대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를 개발 보급하고, 영농기술을 발전시켜 쌀을 자급하기 전까지는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한 기발한 정책이 도입됐다. 모든 음식점에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쌀로 만든 음식을 못팔게 하는 ‘무미일(無米日)’을 시행하고, 혼분식을 강제해 학교에서 도시락을 검사하던 때가 1960∼70년대 였다. 학생이 단속에 걸리면 학교장 까지 책임을 물어 인사조치하기도 했다. 쌀을 이용한 술 제조를 금지하고, 쌀밥이 비만과 성인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킨 것도 이 때였다.

이같은 쌀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경제 발전과 생활 수준 향상에 따라 식생활이 서구화 되면서 쌀 소비가 줄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우리 국민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9.2㎏ 으로, 30년 전인 1989년의 121.4㎏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1인당 평균 하루에 먹는 쌀이 겨우 162.1g 에 불과하다.

오늘(18일)이 쌀의 소비를 촉진하고, 우리 쌀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2015년 제정한 ‘쌀의 날’이다. 쌀을 뜻하는 한자인 ‘쌀 미(米)’자를 파자(破字)하면 여덟 팔(八)자, 열 십(十)자, 여덟 팔(八)자로 풀이되는 점에 착안해 8월18일을 택했다. 쌀 한톨을 생산하려면 모판에서부터 추수 까지 농삿군의 손길이 88번 필요하다는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현재 우리의 주곡 자급률은 겨우 22.5%에 그치고 있다.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는 지구의 기후위기에 대비하고, 세계 각국이 식량의 무기화를 앞세우고 있는 시점에서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쌀의 날’이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쌀의 가치와 소중함을 되새기고, 안정적인 소비확대로 쌀 재배 농가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