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을 준 박승 전 한은총재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헤쳐 나간다. 없는 길을 걷다보면 길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할까 망설이기도 한다. 그러한 길이 모여 인류의 역사가 된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가시덤불 같은 험한 길이었고, 그 길에 많은 사람들이 자취를 남겼다. 그 중 선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 특히 노후가 아름다운 분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김제 백산 출신으로, 올해 84세인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그분이다. 어려서는 역경을 이기고, 젊어서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늙어서는 기부와 나눔을 실천했다. 갈수록 메말라가고, 나와 내 가족만을 챙기는 세태에서 마치 인생의 교과서를 만난 듯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어린 시절 가난한 소작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논밭일, 땔감 마련 등 온갖 농사일을 하며 자랐다. 백석초를 졸업하고 이리공고까지 6년간 새벽에 집을 나와 왕복 14km를 걸어 기차통학을 했다. 대학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난생 처음 서울에 갈 때는 점심으로 고구마를 싸들고 기차에 올랐다.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가서는 장리나 곱빼기 빚을 얻어 등록을 해놓고 고향에 내려가 농사일을 해서 빚을 갚아야 했다.

고난은 당장 고통스럽지만 큰 길과 기회를 주었다. 다행히 졸업과 함께 한국은행에 합격해 안정을 찾은 것이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해외연수생에 뽑혀 36살의 나이에 미국 뉴욕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2년 만에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송곳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듯 공부한 덕분이다. 귀국 후 중앙대 교수로 25년간 후학을 가르쳤으며 각종 공직을 맡아 국가와 사회에 헌신했다.

그는 드물게 보수와 진보정권에서 두루 발탁됐다. 박정희 정부에서 서울신문 논설위원, 전두환 정부에서 금융통화위원, 노태우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건설부장관, 김영삼 정부에서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한국은행 총재,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 국민원로회의 위원으로 국정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노태우 정부에서 분당 일산 등 5대 신도시를 중심으로 주택 200만호 건설을 진두지휘해 부동산 폭등을 잠재웠고, 한국은행 총재 시절엔 중앙은행 독립을 확고히 했다. 학문분야에서도 한국경제학회장 등을 지냈고 모교인 뉴욕주립대에서 자랑스런 동문상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화려한 경력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노후의 기부 실천이다. 2010년과 2011년 백석초에 도서관 건축비 4억원과 장학금 1억원을 기부했다. 2층으로 된 이 도서관은 98명의 재학생은 물론 지역주민의 문화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2018년 김대중평화센터에 7억원, 2019년 이리공고에 7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이어 올해 백석초에 또 다시 10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이 기금은 하나은행의 신탁자산으로 표면금리 3.17%의 이자가 분기별로 백석초에 영구히 지급된다. 폐교 위기에 몰렸던 이 학교는 그의 고향사랑 덕분에 살아났다.

이번 기부로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와 함께 소외된 사람에게 연봉의 20%를 지원하는 기부의 생활화, 가족만의 검소한 자녀 결혼식, 장기기증 서약 등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왔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독주택에서 20년 된 소형차를 직접 운전하는 등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었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의 아름다운 인생에 박수를 보내며 나도 조금이나마 닮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