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 뜨겁게 매미가 운다. 열댓 평 느티나무 그늘이 들썩인다. 뭉실뭉실 구름도 목화송이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다, 악을 쓴다. 폭포수 아래 소리꾼처럼 목울대를 세우지만 아직은 떡목이다. 수리성까지는 멀고도 멀다. 뜨건 피 서너 동이는 쏟아야, 똥물 서너 말은 마셔야 명창이다. 백로(白露) 지나고 풀 먹인 옥양목 홑청 다듬이질 소리가 나야 득음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겁다.
아름드리 둥구나무를 마냥 올려다보던 소싯적, 동네 형이 잡아 준 매미는 연애편지 심부름 값이었다. 타는 삼복에 둥구나무도 손부채처럼 활랑활랑 잎새를 흔들던 그 시절, 매미 소리는 없는 선풍기보다 더 시원했다. 어느덧 가까운 것보다 먼 것이 더 잘 보이는 나이, 느티나무를 올려다보니 한눈에 매미다. 뙤약볕에 달궈진 양철 지붕에 발이라도 덴 듯 뜨겁게 운다. 매미는 짧은 제 생이 아쉬워 저토록 악을 쓰는 것이 아니다. 매미, 목하 소리 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