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시상대에서 일장기를 쳐다보며 일본 국가를 듣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곤욕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중략) 나 자신을 위해, 고통 받는 우리 동포를 위해 뛰고 있는 것이다. 두 번 다시는 일장기 아래서 뛰지 않으리랴.”
일제강점기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손기정 선수가 당시 심정을 이렇게 남겼다.
손기정은 1936년 8월 9일 오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참가, 2시간 29분 19초 2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56명의 세계 강호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했다. 당시 동아일보가 손기정의 유니폼에 새겨진 일장기를 삭제 보도하는 ‘일장기말소사건’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이후 그는 1947년 해방 후 첫 해외 원정인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서윤복, 남승룡 양 선수를 이끌고 참가, 서 선수를 우승케 해 막 일제 압정에서 풀려난 우리 민족에게 또 하나의 기쁨과 자부심, 자신감을 안겨 주기도 한 인물이다.
손기정 선수의 일대기와 일제를 향한 저항, 그리고 그가 말하는 스포츠 평화를 옮겨 놓은 감동의 다큐멘터리 책이 발간됐다. 데라시마 젠이치 작가 <손기정 평전> (도서출판 귀거래사, 옮김 김연빈, 김솔찬). 손기정>
책의 저자인 데라시마 교수는 일제 강점기에서 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문헌과 언론 보도, 선생의 자서전을 비롯한 관계 인물들의 기록과 지인들의 증언을 종합해 참된 올림픽 정신을 구현한 손기정 선수의 생애를 정리했다. 손기정 선수가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식민지 백성의 서러움을 겪으면서도 운동에 전념해 올림픽에서 우승했고, 일제의 탄압을 받았던 청년기를 거쳐 후진 양성과 스포츠를 통한 국제 우호 증진에 앞장선 광복 이후에 이르기까지 생애를 시대순으로 정리한다.
특히 이 책은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손기정 선수의 당시 심정을 엮어냈다. 이 책은 손기정 선수가 시상식에서 받은 월계수로 가슴에 부착된 일장기를 감춘 행위를 일제를 향한 최소한의 저항으로 표현했다. 또 해방 후 손기정 선수가 국적 변경을 요구했음에도 일본올림픽위원회의 당시 금메달을 일본 금메달로 다루고 있는 문제점, 그의 장례식에 일본 스포츠계 관계자는커녕 조화하나 보내지 않은 일본스포츠계를 비판하는 내용도 담겼다.
저자는 “손기정 선수가 말하는 스포츠의 가치는 ‘스포츠인 상호의 존경, 신뢰, 우정’에 있다”고 확신했다. 이어 “일본 독자들이 손기정의 인생에 드리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가 얼마나 인간의 존엄을 유린하고, 맨발로 사람의 마음을 짓밟았는지, 그 역사의 일단을 생각해주기 바란다”고 발간 이유를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