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재유행 그리고 예술인 지원

김문성 국악평론가

긴 장마가 물러갔다. 소멸된 듯 부활하더니 전대미문의 물난리를 가져왔고, 도내 곳곳에 커다란 생채기를 내었다. 장마를 따라하듯 수도권 교회발 코로나19가 맹렬한 기세로 재확산 중이다. 우리 도의 방역에도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의 재확산은 특히 예술인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예술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코로나19로 아파 죽는 게 아니라, 배고파 죽을 것 같다며 현 상황을 우려했다. 모처럼 공연계가 숨통이 트이나 싶었지만, 코로나19 재유행으로 블랙아웃이 장기화할 거라는 공포감에 예술인들이 동요하고 있다. 한 젊은 북잽이는 북채를 던지고, 구직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코로나19는 예술인들에게 뉴노멀 시대에 적응하라는 무거운 과제를 던져줬다. 비대면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한 공연이 단적인 예다. 더하여 공연마인드와 멘탈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집단성이 중시되는 공연 대신 독주 혹은 소수 멤버 중심의 공연으로 대체하고, 관객 소통형 공연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올드노멀 시대에는 일청중, 이고수, 삼명창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관객과의 소통을 화룡점정같은 가치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무대 완성도에 집중하는 공연이 가치를 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예술인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 코로나 블루는 예술인들을 표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 부재 혹은 관객 대신 공연장을 메운 카메라에서 오는 우울함이 상당한데, 이를 극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긍정적인 멘탈이 그 어느때 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하지만 생계곤란을 겪는 예술인들의 경우 멘탈 훈련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제책이 나오고는 있지만, 예술인이 처한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공연 지원외에 별도의 생계 지원이 필요함에도 공연 지원 위주여서, 좀처럼 어려운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공연 지원의 경우 대부분이 대관료, 음향·조명 임차비, 홍보물제작비 등 제작 실비로 소진되며, 정작 예술인들에게 쥐어지는 돈은 몇 푼 되지 않는다. 공연 지원이 생계지원 효과를 함께 내려면 제작 실비 중 예술인 창작 사례비를 최대한 확보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우선 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장 대관료 면제 사업을 한시적으로 성격을 변화하여 위원회가 주요 공연장을 장기 대관하고, 해당 공연장을 예술인과 단체가 무료로 사용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비대면 우수공연에 한해 영상제작비를 무료 지원하는 것처럼,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공연에 대한 영상제작비와 스티리밍 공간 확보를 지자체나 국가가 지원해주는 방식도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창작지원금사업 수혜대상자 기준과 대상자를 일시적으로 넓히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는 예술인 가구원의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 120% 미만이어야 하는데, 한시적으로 이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원사업 중 자부담 의무가 전제된 사업은 이를 면제해주며, 서울문화재단처럼 단체 대표나 예술인의 직접 사례비 지급이 가능도록 허용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책에 더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도민들의 예술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다. 코로나19에 긴 장마에 당장 배추값 인상을 걱정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국민과 국가가 예술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받던 경험들을 상기시킨다면 이들 예술인에 대한 관심이 곧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백신이고, 치료제로서 기능할 것이라는 확신은 지나친 허언일까?

/김문성 국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