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

김은정 선임기자

코로나 19가 우리나라에서도 발병한 이후 신천지 교인들이 가세한 확산세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봄, 화제를 모았던 의학 드라마가 있다.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 수 있는 20년 지기 의과대 출신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tvN의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다. 그즈음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이 드라마가 심심찮게 화제에 올랐다.

같은 의과대 출신인 다섯 명 친구들은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10년차 전문의. ‘적당한 사명감과 기본적인 양심을 가진, 병원장을 향한 권력욕보단 허기진 배를 채우는 식욕이 앞서고, 슈바이처를 꿈꾸기보단, 내 환자의 안녕만을 챙기기도 버거운, 하루하루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한’ 평범한 의사들이다. 그러나 ‘병원 안에서 배우고 아프며 성장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래서 현실을 다시 둘러보게 하는 공감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돌아보면 90년대에 방송되었던 ‘종합병원’으로부터 ‘외과의사 봉달희’ ‘하얀거탑’ ‘뉴하트’ ‘산부인과’ ‘골든타임’ ‘닥터스’ ‘라이프’ ‘낭만닥터 김사부’ 등 대부분의 의학드라마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었다. 의학드라마로서 기본적인 고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논란이 된 작품도 있지만 거개의 작품들이 바로 이것, 휴머니즘의 힘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도 예외가 아닌데, 매회 전해주는 잔잔한 감동과 진한 울림은 다른 드라마들보다도 유독 깊었다. 이제 마흔 살이 된 다섯 명 의사들의 치열한 직업의식과 인간적인 따뜻함이 전하는 위안과 공감이 컸던 덕분이다.

정부의 의료정책에 맞선 의료계(전공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명분과 실리조차 각자도생(?)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 와중에 대한의사협회의 의료정책연구소가 파업 정당성을 위해 만든 홍보물 내용이 논란이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누굴 선택하겠느냐’고 묻는 질문에 답은 두 가지.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의 산부인과 양석형 교수는 레지던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보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 좋아.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넌 좋은 의사가 될 거야.”

드라마는 드라마 일 뿐인가. 현실과의 간극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