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랑과 도서정가제법

김은정 선임기자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자크 랑. 지금은 프랑스 하원의원회 의원으로 활동 중인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병인양요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의궤)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그는 미테랑 대통령 시절 문화부 장관으로 있을 때부터 의궤 반환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해 성사시켰다.

문화 대중화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특히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던 문화권력을 분산시켜 지역의 문화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정책으로 지역문화를 활성화하고 각 도시마다 특색 있는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게 한 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자크 랑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그가 주도해 만들어냈다하여 ‘랑법’이라 불리는 도서정가제법이 그것이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서정가제를 법제화(1924년)한 나라다. 그러나 대형서점들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작은 서점들이 고사하는 위기를 맞자 1981년 미테랑 정부는 소규모 동네서점과 소형출판사를 보호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도서정가제법을 만들었다.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책을 판매해 국민의 독서평등권을 확보하기 위한 이 법은 전국적으로 균형 있는 서적 유통망을 유지하고, 출판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기반을 만드는데 주효했다. 이 법의 시행으로 프랑스 도서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프랑스의 도서정가제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도서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형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상륙이 원인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불공정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소규모 서점을 위해 더 강력한 법안을 만들었다. ‘반 아마존 법’이라 불리는 도서정가제법이다. 이 덕분에 프랑스의 전통서점과 동네책방은 자유경쟁 시대에서도 살아남아 문화강국 프랑스를 지켜가는 상징이 됐다.

2003년부터 시행되어온 우리나라의 도서정가제가 개정 시한을 앞두고 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3년마다 타당성을 재검토하는 과정에 따른 것인데 올해는 2014년 개정된 현행 도서정가제에 대한 찬반 입장이 팽팽해 논란이 일고 있다.

프랑스 역시 이러한 과정을 피할 수 없었을 터인데 들여다보니 프랑스의회는 자크 랑이 주도한 도서정가제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당시 랑 장관은 법을 제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당장의 이익에 가려서는 안 될 책의 문화적 특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