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史蹟)은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또는 관상적 가치가 큰 국가지정 문화재다. 역사의식과 민족정신이 담긴 교육의 터전이자 역사의 현장이다.
임진왜란 때 호남을 지켜 나라를 구한 완주 진안 일대(곰티재)의 웅치전적지를 사적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미완이다.
웅치전투는 곡창인 전라도를 지킨 가장 중요한 전투로 평가 받는다. 전주성 방어선인 이 전투에서 수많은 왜군이 전사한 것으로 유성룡의 ‘징비록’은 기록하고 있다. 이 항전이 있었기에 다음날 전주 인근의 안덕원 전투에서 왜군을 격파할 수 있었다. 왜군은 전주성 공격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당시 호남이 얼마나 중요했던 지는 웅치전투 이듬해인 1593년 7월16일 이순신이 사헌부에 있던 친구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 잘 드러나 있다. ‘호남은 국가의 보장(保障)이니 만약 호남이 없다면 국가도 없다’ 이순신 전서에 나오는, 그 유명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론이다.
지난달 25일 열린 ‘웅치전적지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위한 재조명’ 학술대회에서도 웅치전투는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큰 승전으로 규정됐다. 하지만 사적으로 지정되지 않아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라북도 기념물(제25호)로만 지정돼 있을 뿐이다.
사적 지정은 지난한 작업이다. 역사적 의의와 학술적 가치, 용역, 시굴 및 발굴, 문화재 보호구역 설정, 학술대회, 정비계획 수립, 주민공청회 등 조건이 복잡하다. 웅치전적지의 경우는 몇차례 학술대회가 열렸고 역사적 학술적 가치도 인정 받고 있다. 관련 용역도 11월 말 납품된다. 지표조사는 돼 있지만 시굴 및 발굴 등 정밀조사는 향후 과제다.
더 중요한 것은 웅치전적지가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에 걸쳐 있다는 점이다. 두 지역에 접한 경우는 사적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두 지역은 기념행사나 추모행사를 따로 추진하고 있고 향후 어느 곳이 주(主)가 될지, 부(副)로 밀려나는 것은 아닌지에 관심이 크다. 전투장소, 문화재 출토, 구역설정을 놓고도 충돌할 수 있다.
두 지역의 갈등과 대립이 노골화되면 웅치전적지 사적 지정은 하세월이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이다.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 때도 그랬다. 황토현전승일과 무장기포일을 놓고 정읍과 고창의 유족회 등 관련 단체가 치열하게 대립했다. 토론회장에서는 폭력사태까지 일었다. 조율이 불가능해지자 마침내 전북도가 정부에 직권 제정을 요청했고 정부는 2018년 황토현전승일(5월11일)을 국가기념일로 선포했다.
10년 이상을 허송세월하고 나서야 국가기념일이 제정된 것인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웅치전적지 사적 지정도 전북도가 TF팀을 구성하는 등 속도감 있게 밀고 나가고, 완주 진안군과 관련 단체는 사적지정 숙제를 전북도와 전문가 집단에게 맡기면 성과가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영일 전북도 학예연구관은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면 일처리의 효율성이 높아져 6개월만에 사적 신청업무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적 지정의 최후 관문인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회의 위원장을 이재운 전주대 교수가 맡고 있고, 이경한 원광대 교수가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여간 호재가 아니다. 이런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우리지역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 밖에 안된다.
웅치전적지가 역사적 가치와 위상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건 문제다. 호국선열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전북의 자긍심과도 연결된 사안이다. 송하진 도정 임기 내에 웅치전적지가 국가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리더십이 발휘되길 기대한다.
/이경재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