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35)소설 같은 삶을 소설로 쓴 작가, 이정환

소설가 이정환을 따라다니는 말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말은 ‘사형수 소설가’, ‘한국의 밀턴’, ‘소설이 된 소설가’ 등이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정환은 남다른 삶을 살다가 간 사람이다.

1930년 10월 18일 전주에서 태어났고, 1946년 전주남중학교를 거처 1947년 전주농업학교(현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에 전학하였다. 재학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학도병에 자원 입대하였다. 북한군과의 포항전투에서 포로로 붙잡혔으나, 탈출에 성공한다. 그 후 다시 육군에 입대하였지만, 임시휴가 중 모친의 숙환으로 귀대날짜를 어김으로써 탈영병이 되고 만다. 이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7년의 옥살이 끝에 1958년 출감했다. 그의 방황을 눈치챈 집안에서는 그를 서둘러 결혼시킨 후 가업인 서점을 이어가도록 했다. 그 뒤부터 그의 삶은 책방 속에서 소설의 잉걸불로 피어난다. 1969년 『월간문학』에 소설 「영가」가 입선되었고, 이듬해 같은 잡지에 「안인진 탈출」로 등단하면서 소설을 활발하게 썼다. 1980년에 당뇨병의 망막증으로 실명되었지만, 그의 소설 쓰기는 계속되다가 1984년 55세의 나이로 작고하였다.

이처럼 순탄하게 살아오지 못한 아버지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의 딸 ‘이진’ 시인은 아버지의 문학과 삶을 조명하기 위해서 만든 “이정환 블로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이니까 누구나 끝은 같겠지만, 유독 많은 풍상을 겪어서, 자신이 살아온 삶이 한 편의 대하소설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작품들이 독자와 연구자들에게 널리 익혀서 소설세계에 제대로 조명되기를 바랍니다.”

이정환 소설가는 말년에는 당뇨병 망막증으로 시력을 잃어버렸다. 원고지 칸이 보이지 않게 되자 자를 대고 어림잡아 글을 써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고, 그것마저 어려울 때는 자신이 구술한 내용을 받아 적게 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렇듯 이정환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극적인 사건을 체험하여 평범하지 않은 개인사를 살아온 작가다.

△책방에서 책 읽다가 소설가로 등단

이정환은 부친이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책 속에 묻혀 살았다. 후에 자신도 전주와 서울에서 직접 책방을 열어 운영했으며, 그런 연유로 다양한 고서와 신서를 두루 접하게 되었으며 평생 ‘책벌레’라는 별명을 지니고 살았다.

그는 1959년 전주시 남부시장에 <덕원서점> 을 열어 운영하였고, 전동으로 자리를 옮겨 <르네상스서점> 을 경영하였다. 1970년 서울로 이사한 뒤, 소설 쓰기에 전념했는데, 그때 쓴 소설이 신동아논픽션 공모에 당선되어 받은 상금으로 다시 서점을 차렸다. 그후 종암동에 ‘대영서점’을 열어 장사가 잘 되면서부터는 어느 정도 여유를 찾기도 했다. 이중연의 『고서점의 문화사』(혜안,2007)에는 ‘3대를 이어 온 헌책방 주인 이정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가 얼마나 책 읽기를 좋아했는지는 그의 군대생활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항상 호주머니에 책을 빽빽하게 넣고 다녔는데, 어느 날은 적진에서 날아온 총알이 책이 든 호주머니를 맞춰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그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다져온 독서 경험을 발판 삼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월간문학』에 남사당패들의 애환과 삶의 비애를 그린 단편소설 「영기(令旗)」가 입선되었고, 이어 1970년에는 같은 잡지에 그의 교도소 생활과 병고, 가난 체험 등이 반영된 단편소설 「안인진(安仁津) 탈출」이 당선되면서 소설가가 되었다. 이어서 『신동아』에 「자전기(自傳記)」, 「사형수(死刑囚) 풀리다」가 당선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10여 년간에 걸쳐 「까치방」, 「샛강」, 「유리별 대합실」, 「뱀춤」, 「겨울나비」, 「너구리」, 「부부」 등이 속속 발표되면서 소설가로서 자리를 굳혀갔다.

1976년에 출간한 단편집 『까치방』은 그를 작가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다지는 바탕이 되었다. 그는 첫 단편집 『까치방』을 내면서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첫 단편집을 펴내면서 뭐 따따부따한들 무엇이 얼마나 얻어지겠습니까마는 후기라 초(草)해놓고 좌사우고(左思右考)해 보니 문득 내 살아 있는 몸둥이가 만져지고 그저 즐거워 이렇듯 점잖은 후기 자리에 넣기에는 촌동네 머슴애 같은 육성만이 절 얼큰하게 들쑤셔옵니다.

아직도 나의 까치방 창가에선 저 검었던 나날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겁니다. 웅얼웅얼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까? 거전(去前) 이야기대회를 벌이는 벽 속 화자(話者)들의 끝없는 애타함이 울려오는 중입니다.

훈기에 매달려 제작하려 합네다. 그것은 저 하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외다. 제가 사는 새벽을 매일처럼 길조가 절 깨워놓고, 수많은 화자들이 밤마다 베갯머리에 앉아 호소해 오는 것을……”

이 『까치방』에는 열아홉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바람개비’ 편과 ‘호각소리’ 편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바람개비’ 편에서 그는 소설가로서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주인공은 ‘까치방(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바깥세상으로의 탈출을 여러 번 시도한다. 철창 밖에서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소녀풍과 소남풍도 만나면서 새들의 유희도 바람개비처럼 자유롭게 놀게 하였다.

또한 1976년 『창작과 비평』에 연재한 장편소설 『샛강』은 이정환의 문학적 자서전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소설은 서울 변두리에 거주하는 가난한 서민들의 척박한 삶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이들이 얼마나 억척스럽게 자신의 삶에 헌신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이정환의 삶이 엿볼 수 있는, 그래서 그의 자서전으로 읽히기도 하면서 동시에 1970년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탁월한 사례가 되기도 하였다.

△한국의 존 밀턴이 된 소설가 이정환

불후의 명작 중에는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쓴 작품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영국의 대시인 존 밀턴이 쓴 『실낙원』이다. 말년에 실명한 존 밀턴이 쓴 대서사시, 그래서 『실낙원』의 의미가 더 특별하듯, 이정환 소설가에게도 병마와 관련된 체험이 있다. 당뇨병의 합병증인 망막증을 앓게 되어 사람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워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여 실망하고 만 것이다. 작가가 실명한 것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썼다.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창작 열기는 더 뜨거워졌고, 자를 대고 원고지에 글을 썼다. 아내가 이 글을 해독해 주었다고 한다. 손가락이 부어 볼펜을 쥘 수 없을 때는 구술로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는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이 불후의 명작 『실낙원』을 썼던 것이 망막증으로 실명했던 50세 때였다고 말하면서 자신도 생명이 다할 때까지 소설을 쓰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정환은 작고할 때까지 7편의 장편과 67편의 단편으로 약 20여 권의 작품집을 남겼다. 수인(囚人)생활과 병마 등 굴곡 많은 삶을 살았지만, 그런 삶들은 훗날 그를 큰 소설가로 우뚝 서게 하는 힘이 되었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의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그는 강인한 의지로 자신과 싸워 이긴 사람이었다.

소설가 이문구는 이정환의 파란만장한 삶을 실명(實名)소설로 발표한 바 있다. 2018년 ‘제1회 전주 독서대전’에서는 작고문인 중 한 사람을 선정하여 그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였으며, 그 첫 번째로 소설가 이정환을 선정하기도 했다.

2020년은 이정환 소설가에게는 특별히 의미 있는 해가 되었다. 그의 탄생 90주년과 등단 5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자녀들이 ‘이정환문학전집’을 헌정하였기 때문이다. 전 10권으로 된 이 전집에는 그가 쓴 소설과 평론 및 세미나 원고, 기고 자료, 유고시, 미발표 유작들, 신문 연재소설, 신문기사 모음, 육필원고, 기타 자료 등이 실려 있다. 특이한 점은 전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표되지 않은 그의 유고시가 발견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이번 전집 출간에 대해 이근배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이정환 선생 탄생 90주년, 등단 50년의 해에 ‘이정환문학전집’을 헌정한다 하니 이는 한국문단의 대경사라 하겠습니다. 이로써 한국소설문학사의 한 봉우리를 이룰 것이며 선생의 치열했던 삶과 소설 혼이 큰 빛으로 타오르리라”고 전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일찍부터 책방을 운영하며 책 속에 파묻혀 살았고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극한 상황을 몸소 겪으면서도 한 번도 실망하거나 절망하지도 않았다. 이정환 소설가는 어쩌면 지금도 그가 만든 소설 속의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