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풍류와 샘소리터

전북도립국악원 서경숙 학예연구사

전북도립국악원 서경숙 학예연구사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 했던가. 샘소리터의 첫 방문 때의 내 기억은 풍성한 먹거리와 풍류, 그리고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었던 훈훈한 날이었다.

정읍의 내장산, 내장호 아래에는 달맞이골이라 불리는 월영마을이 있다. 마을 안쪽으로 가다 보면 ‘샘소리터’라는 풍류방이 자리 잡고 있다. 샘소리터는 이곳의 터지기인 김문선 씨가 사재로 정읍의 소리와 멋, 맛, 그리고 정읍의 풍류 정신을 잇고자 만든 풍류 전용 공간이다. 이곳에는 영원한 풍류인으로 살고자 하는 김문선 씨와 음식 솜씨가 일품인 그의 아내 김은례 씨가 이웃들과 함께 항상 다과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풍류를 즐기고 있다.

샘골 정읍은 음악의 시원이며 풍류의 고장이다. 이곳에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노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정읍사이다. 이 노래의 정신을 최치원은 풍류라 하고 감운정을 지어 몸소 이 정신을 실천하였으며, 최치원의 풍류 정신을 이어받아, 정극인은 향약이라는 자치규약을 만들어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였다. 그 정신이 현재 정읍풍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풍류란 바람의 흐름처럼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않고, 세속적인 가치를 벗어나 서로 즐겁게 어울리며,?모든 것에 마음을 열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멋있는 삶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운치와 멋스러움이 있음을 뜻한다.

풍류를 즐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한다. 먼저 놀 수 있는 공간인 풍류방이 있어야 한다. 풍류방은 대가댁 사랑이나 별장, 재각, 풍류객들이 공동으로 지은 누각이나 정자가 그 역할을 하였다. 다음은 풍류방에서 놀 수 있는 음악이 있어야 한다. 음악은 樂而不流哀而不悲(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해하지 않는다)한 중용의 도를 실천하는 음악으로 대표적인 곡이 영산회상이다. 그 외에 먹거리로 술이나 차가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풍류 정신이다. 풍류는 악한 욕심을 버리고 서로를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삶의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나만이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세상, 이것이 바로 풍류 세상일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풍류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지 모르나 우리 선조들은 더 힘든 삶을 살았어도 풍류심을 잃지 않았다. 예술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과 마음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샘소리터의 터지기인 김문선씨는 이러한 풍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실천하고 있다. 샘소리터는 항상 개방되어 있어 언제든지 한 잔의 차를 즐기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샘소리터에는 항상 풍류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코로나 19로 힘든 요즈음, 어느 때보다도 풍류 정신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풍류 정신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전북도립국악원 서경숙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