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내 서재 - 신팔복

신팔복

신팔복

내 어린 시절은 책이 귀했다. 농사만 짓고 살던 두메산골이라 책이 귀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모여 길쌈하며 재담이 좋으신 분이 구전돼오던 이야기를 꺼내면 호기심이 발동하여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장화홍련전을 들으며 몸이 오싹했고, 콩쥐팥쥐 이야기를 들을 때는 몇 번씩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긴장했던 숨을 후련하게 내쉬었다. 듣고 또 들어도 홍미 진진하고 감명 깊었던 이야기는 꼭 이웃 동네에서 일어났던 일 같아 오래도록 머리에 남았다.

학교에 입학해서 장끼전을 빌려다 읽으며 키득거렸다. 교과서도 물려받던 시절이라 동화책을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어 진안읍내 사거리 서점에 들러보니 책이 꽉 차 있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랜 기간 조금씩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타잔’을 사서 읽었고, 다음엔 ‘보물섬’을 사서 읽었다. 그때부터 서재가 무척 부러웠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과학전문 서적을 비롯하여 단편소설, 문학 전집, 백과사전 등을 샀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살 때라서 여유 있는 방이 없었다, 아내와 힘께 쓰는 방은 세간 살림과 아이들 육아 용품으로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많지 않은 책이었지만 툇마루에 보관해야 했다.

자녀들을 출가 시키고 빈 빙이 생겼다, 책장을 사고 책을 정리하여 자연스럽게 작은 내 서재가 만들어졌다. 컴퓨터로 인터넷도 즐기며 글도 쓰고 독서도 하는 장소로 오로지 내 전용 공간이 됐다. 평생교육원에서 수필 공부를 하면서부터 많은 문우들도 생겼다. 그들이 발간한 책을 보내주면 책꽂이에 보관하여 그런대로 서재의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겨서 매우 좋다. 나는 책을 모아 두었지 읽는 것에 등한했다. 글을 쓰려면 풍부한 식견이 있어야 하는데, 주제도 모르면서 글을 쓰려고 했으니 엉터리였다. 마치 맥도 짚지 못하면서 침부터 꽂는 돌팔이와 같았다. 몸살을 않는 것처럼 머릿속만 어지럽고 글은 한 자도 나가지 않았다. 책상에서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창작을 해보지만 지금도 글쓰기는 쉽지 않다.

요즘은 서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도서관과 복지관이 생겨서 이를 대신하고 있다. 전문 서적을 비롯해 문학, 철학, 종교, 과학, 경제, 사회, 복지 등 다양한 책들이 엄청 많다. 맘만 먹으면 구애받지 않고 독서를 할 수 있다. 가까운 인후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대출해 오고 또 너른 공간에서 읽기도 한다. 시설이 쾌적하고 조용해 책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여름엔 냉방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되어 휴식 공간도 되는 일거양득이다.

책에는 인생의 길이 있고 정보가 있다. 험난한 인생 항로에 등댓불이 되어 밝혀준다. 좋은 책은 말이 없어도 서로 통하는 친구처럼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작가와 대화할 수 있다. 독자는 감명 깊은 문장이나 새로운 것들을 깨닫게 되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 진다. 은연중에 그의 고매한 인품을 닮고 싶어진다. 그게 독서의 매력일 거다.

내 서재는 보잘것없는 작은 공간이지만, 책을 읽을 때는 세상의 번거로움을 잊고 마음이 평화롭게 해주는 안식처다. 고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쌓아두기만 했던 책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세상의 깊이를 깨닫게 해주는 마음의 양식인 주는 독서삼매경에 빠져 볼까 한다. 젊을 때 날밤을 새워 책을 읽지 못한 것이 눈도 침침해지는 지금에 와서야 때늦은 후회로 남는다.

 

신팔복 수필가는 중등교사로 퇴직해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 회원, 진안문협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마이산 메아리>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