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심장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세상에 나무의 심장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으려나. 아마도 거의 없겠지만, 이 책은 나무의 심장소리를 사랑해 온 한 남자의 숲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인 안도현도 “보일러 공장 아저씨는/살구나무에 귀를 갖다대고/몸을 비벼본다”( <시인> )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시인>
‘숲 읽어주는 남자’라니 제목부터 매력적이다. 우선 표지부터 고즈넉한 숲을 만나러 가고픈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한다. 이 책은 숲과 더불어 살면서 삶의 지평을 넓혀온 저자의 진솔한 생활기록이자 친절한 숲 해설 안내서이다. 책 군데군데 있는 세밀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가 직접 그린 세밀화는 그가 얼마나 숲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필요하다면 사진으로 쉽게 처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구태여 손과 정성이 많이 가는 세밀화를 택한 마음이 정겹다.
올해 우연한 기회에 생태해설사 수업을 들으면서 꽃과 나무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절꽃 이름이야 그렇다 해도 초살도나 결각과 같은 단어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어휘였다. 토종민들레와 서양민들레를 구분하는 법도, 계수나무 잎이 익어가면서 달달한 솜사탕 냄새를 풍긴다는 것도 올해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무심히 스치며 이름으로만 알던 꽃과 나무들이 얼마나 많던가. 이 책은 숲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이나 숲과 친해질 준비를 마친 이에게는 안성맞춤인 해설서이다.
책에는 우리 사는 동네의 공원과 가로수, 남산과 북한산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숲을 읽어주는 남자답게 여러 나무와 숲이 머금고 있는 내밀한 이야기를 정결하게 풀어놓는다. 이 책은 때로 숲에 관한 백과사전을 읽는 느낌이 들다가도 맛깔스러운 수필을 읽는 느낌이 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는 나무와 숲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숲에 깃들어 사는 다양한 생물에 대한 살뜰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토끼풀 이야기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였던 손기정 선수와 얽혀 있는 대왕참나무 이야기도 흥미롭다.
책 곳곳에는 알아두면 요긴한 꽃과 나무 이야기가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만난다면 내년 봄을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어쩌면 서둘러 들판에 나가 민들레와 냉이를 구분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겨울을 이긴 봄꽃이나 새순을 토해내는 나무를 만나면 당신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가슴은 거칠게 뛸 것이다.
저자는 본문만으로는 아쉬웠는지 나무와 친해지는 7단계를 부록으로 남겨 두었다. 조금은 어색할 수도 있지만 나무와 좀 더 친해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단계이다. 그의 표현으로 하자면 나무 ‘식별하는 법’이지만 내게는 나무와 ‘친해지는 법’으로 읽힌다. 이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더 풍성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당신의 인생이 더 따뜻하고 풍요로워질 것만큼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