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해방은 새로운 문명적 사고로부터

황호진 전 전북도 부교육감

황호진 전 전북도 부교육감

코로나19는 지금 초겨울의 냉기와 함께 전 세계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연초부터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는 이 순간에도 우리의 생명과 삶을 무차별적으로 할퀴고 있다. 2020년은 코로나 고통과 함께 잃어버린 한 해가 될 것 같다.

전염병은 인류가 가축을 키우면서부터 우리와 역사를 함께 해왔다. 수많은 제국과 문명의 흥망성쇠를 가져온 주된 요인이었다. AD 160-180년경 로마에서 발생한 안토니우스 역병은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당시 개척되기 시작한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파되어 한나라의 쇠망을 가져왔다. 14C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음으로 내몬 페스트는 역설적으로 르네상스를 가져오기도 했다.

코로나19는 박쥐에서 천산갑을 통해 사람에게 옮겨졌다고 한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고 증식할 수도 없는 존재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침입자 인간에 의해 우리에게 옮겨진 것이다. 이번 팬데믹의 원인은 본질적으로 무참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요인이 얽혀 있다.

코로나는 ‘박멸’될 수 있을 것인가? 결론은 ‘아니다’이다. 곧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고 해도, 코로나는 당장 전 세계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 백신이 듣지 않는 변종이나 더 센 놈이 등장할 여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사람은 사람대로 죽어나가고, 우리의 삶과 경제는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있다. 이제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자. 우리의 경제와 삶이 ‘무한욕망’의 거품에 기반하고 있다면, 이제는 지속가능한 경제와 삶의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과도한 접촉과 개인적 삶의 희생이 일상이었다면, 이제는 더 효과적인 접촉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대규모의 인명손실을 반복하는 물류창고 화재 참사와 노동착취로 인한 택배노동자의 계속된 죽음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 우선인 사회에서 생명에 대한 연민이나 목숨보호를 위한 노력은 찾을 수 없다. 하물며 우리 기업까지 참여하는 열대우림의 끝없는 파괴와 헤아릴 수 없는 동식물의 생명파괴는 어찌할 것인가.

매일 죽음과 맞닥뜨리고 있는 소외된 우리 이웃들과 동.식물 그리고 미생물까지 모든 생명이 이 세상의 주체로 우뚝 설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문명의 중심이 물질의 탐욕적 소비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약탈적 자본주의와 무한경쟁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공존’과 ‘협력’과 ‘나눔’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지향이 하나의 흐름이 되도록 하자. 이러한 흐름이 물결이 되어 온 세상에 넘치게 하자! 이것이 팬데믹 이후 우리가 소망하는 새로운 ‘문명세상’이 아닐까?

나부터 깨어나자! 팬데믹 이후의 새로운 세상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앞장서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우리 모두의 각성과 합의, 그리고 치열한 협동적 노력이 요구된다. 나부터 전혀 새로운 ‘나’로 거듭나자.

동시에 교육을 통해 자신을 절제하고 헌신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재를 양성하자. 소비가 미덕이 아니라 소비에 앞서 자연을 생각하고, 환경파괴를 유발하는 소비에 일종의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비판적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모든 생명이 함께 기쁨의 함성을 지르는 날을 생각해보자. 우리의 존재 자체가 다른 생명의 기쁨이 되는 날을 꿈꾸어보자. 우리 모두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자! /황호진 전 전북도 부교육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