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마지막 글이 되었다. 고민고민하다가 특별히 아름다운 동요의 가사로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한경아 선생님의 작사와 윤학준 선생님의 작곡으로 탄생한 예쁜 동요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사라졌을 법한 예쁜 말들의 나열. 왜 어린 아이들만 이런 가사로 노래해야 하는가. 우리에게도 노래할 자유가 있지 않은가? 우리도 조금은 쑥스럽고 오글오글하겠지만 불러보자. 아이들의 동요를.
꼭 안아줄래요.
내 친구 아픈 마음을.
내가 속상할 때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친구의 잘못은 따뜻한 용서로 안아주고
친구의 실수도 이해로 안아줄래요.
어쩌다 생긴 미움은 어떡할까?
사랑으로, 사랑으로 안아줄래요.
꼭 안아줄래요. 따뜻한 마음으로
꼭 안아주세요. 포근한 마음으로
행복꽃이 활짝, 우리들 마음에 피어나게
꼭 안아줄래요.
내 친구를. 꼭 안아줄래요.
이 노래의 배경은 작사가 한경아 선생님께서 초등교사로 계시면서 아이들이 싸울 때 어떻게 대처하게 할까 고민해서 나온 글이라고 한다. 그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 예쁜 말들의 나열에 파스텔톤의 동심이 우러나게 윤학준 선생님이 오선에 그림을 그려 완성시킨 곡이다. 처음 팬텀싱어에서 이 곡을 접했을 때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한 죄의식에서인지 따뜻한 위로의 포옹에 감동을 받아서인지 아이들의 순수함이 내게는 다 사라져 버린 아쉬움 때문인지. 누군가는 “갱년기라 그래”라며 일침을 놓기도 했다.
누구의 실수를,누구의 잘못을 용서와 이해로 안아주라는 이 노래는 현대사회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현실감 없는 가사임에 분명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오는 잔인한 뉴스나 범죄의 내용을 보면 얼마나 거리감이 있는 동요인가? 그런 현실에 있으니 동요를 부르거나 들을 때 오글거리고 간질거리는 게 당연할 것 같다. 눈물이 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아닐까?
우리가 바라는 꿈 같은 세상. 그러나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세상일수도 있기에.
우리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반 친구 중 남학생 아이가 너무 괴롭힌다는 얘기를 눈물을 글썽이며 하더랬다. 그 아이에 대해서는 선생님을 통해서도 들었고, 엄마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아이었다. 내가 실제로 보니 관리가 집중적으로 필요한 아이여서 딸아이에게 뭐라고 해 줄 말을 찾기 어려웠다. 왜냐면 “선생님께 말씀드려”라기에도 한두명 아이가 얘기하는 것도 아닐 테고 학부형들도 한두명이 건의를 했겠는가? 그래서 내가 해준 말은 “자꾸 속상하게 하면 그냥 꼭 안아줘봐”라고. 사실 실천하기 어려웠을 얘기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기에 쉽게 아이에게 주문한 것이지 직접 겪었더라면 욕을 한 바가지, 폭력도 쓸 수 있다면 쓰지 않았을까? 상상으로는 100% 그랬을 거다.
이렇듯 아이들에게만 조언하고 예쁜 세상을 떠넘기는 책임처럼, 동요라 이름짓고 “너희들이 부르는 노래야”라고 지정하지 말고 우리도 오글거리겠지만 계속해서 되뇌고 불러 보면서 예쁜 말들과 착한 맘들을 지켜보려 노력하면 어쩌면 동요 같은 일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실제로 말썽부리던 그 아이도 6학년 연극제에서 보았을 때 조금은 아이들과 어우러져 있었다. 아이들이 우리보다 훨씬 나은가 보다. 버리지 않고 안아 가는 걸 보면. 많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실수한 누군가를 꼭 안아주는 오늘이었으면 한다. /이은선 선이오페라앙상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