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靈)택트 성탄절

삽화=권휘원 화백

성탄절이 코앞이지만 예년 같은 성탄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거리마다 울려 퍼지던 캐럴과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는 사라지고 사람들로 붐비던 길거리는 적막할 정도다. 그야말로 고요한 성탄절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상의 변화는 물론 지구촌의 최대 축제문화까지 바꿔버렸다.

기독교계에선 언택트(Untact) 성탄절을 맞아 영(靈)택트 성탄절을 보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비록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는 없지만 예수의 사랑과 평화 안에서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요란하고 떠들썩한 성탄 분위기 대신 이 땅에 평화의 메신저로 온 아기 예수를 만나는 고요하고 거룩한 성탄절 문화를 회복해보자는 권유다.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감안해 서울시향의 음원 협찬을 받아 크리스마스 캐럴 20곡을 유튜브 TV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방역활동에 진력해온 의료진에게 케이크를 전달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겐 김장김치 나눔 행사를 가졌다. 교회별로는 식료품 등 각종 구호 물품과 마스크를 전달하거나 온라인 성탄 콘서트를 열어 축하 행사를 갖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 주위의 소외된 이웃들은 더 추운 성탄절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생활경제가 더욱 위축되면서 이웃에 대한 관심도 얼어붙고 있다. 사회복지시설과 군부대, 그리고 소외계층을 찾는 발길도 뚝 끊겼다. 이들에겐 어느 때보다 더 쓸쓸하고 힘겨운 성탄이 되고 있다.

2020여 년 전,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도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만삭의 여인에게 방을 내주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추운 겨울날 허름한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았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해준 사람들은 주위의 이웃들이 아니라 먼 길을 달려온 동방 박사와 목자들 몇 사람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맞았던 성탄절과는 너무 다른 성탄이 아닐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이 고요한 성탄절로 되돌려놓았다. 오스트리아 요셉 모어 신부가 작사한 대표적 캐럴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가사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조용한 성탄절을 맞게 했다. 왜, 예수께서 고요한 밤 가장 낮고 초라한 곳으로 오셨는지 그 의미를 되새기는 영택트 성탄절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