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작가 - 신여랑 소설 ‘범수 가라사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지겨움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보석처럼 빛나는 열정, 사랑, 추억들이다. 그런데 ‘허세로 무장한 사색’이야말로 삶을 버티게 하는 요소라고 말하는 소설이 있다.

『범수 가라사대』의 주인공 범수는 엄마 친구 결혼식에서 ‘결혼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어느 날, 군중 속의 고독보다 더 강한 고독을 만나게 될 때 칸트처럼 사색하라’는 축사를 하는 중2 남학생이다.

운동화를 ‘전족’처럼 느껴서 ‘쓰레빠’를 신고, 선생님 책상에서 외출증을 훔쳐 점심시간에 집을 오가며 사색과 고독을 즐긴다. 하지만 친구들한테 외출증을 뺏긴 뒤 범수의 산책은 막을 내린다.

“허세 없는 사색이 있을까요? 세상 모든 ‘범수’의 사색을 지지합니다.”라는 작가의 말을 읽노라니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학창시절, 내 꿈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때는 꽤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그 당시 내 곁에는 팝송을 즐기고 춤을 잘 추는 친구가 있었는데 내 말을 듣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야. 니가 예수냐?”

난 내 꿈을 지지하지 않는 친구에게 서운해서 한동안 거리를 두었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허세였고 생각이었지만 그것이 내 삶의 태도를 만드는데 영향을 준건 분명하다. 아니, 그 덕분에 그나마 이 만큼이라도 살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도 내 마음 속에, 내가 하는 말 속에 스며있는 허세 덕분에 하루하루 버텨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허세로 무장한 사색’은 내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일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취준생의 그것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술 취한 가장의 그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그런 허세를 받아주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쓴 신여랑 작가가 얼마 전에 전주에 둥지를 틀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차분한 성품 속에 숨겨진 유쾌함과 재기발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내 마음 속에 감춰둔 ‘허세로 무장한 사색’을 꺼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