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지수

강인석 논설위원

삽화=권휘원 화백

‘불복’에 짓밟힌 미국 민주주의, 점령당한 ‘미국 민주주의’, 244년 미 민주주의 ‘치욕의 날’.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다음날인 지난 8일 국내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한 톱기사 제목들이다. 한마디로 미국 연방의사당이 ‘짓밟히고 점령당한 치욕의 날’로 축약된다.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의사당이 짓밟히고 점령당한 사건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은 정치, 경제, 군사는 물론 문화와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다. 1990년대초 냉전 종식이후 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1위, 세계 최강의 군사력 등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세계의 경찰 임을 자임하는 나라다.

그러나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민주주의 수준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정도를 계량화한 ‘민주주의 지수’가 이를 잘 보여준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정보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전 세계 167개국의 민주주의 상태를 조사해 작성하는 민주주의 지수의 2019년 미국 순위는 세계 1위가 아닌 세계 25위다.

EIU는 2006년부터 매년 △선거과정과 다원주의 △정부의 기능 △정치 참여 △정치 문화 △시민의 자유 등 다섯 가지 구성 요소를 1~10까지의 지수로 계량화한 뒤 이를 평균 낸 값으로 각 국의 민주주의 지수를 매긴다. 지난해 발표된 ‘민주주의 지수 2019’(Democracy Index 2019)에서 미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7.96이었다.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8.0, 순위는 세계 23위로 미국과 별 차이가 없었다. 민주주의 지수가 8.1~10.0인 국가는 ‘완전 민주주의’, 6.1~8.0인 국가는 ‘불완전 민주주의’, 4.1~6.0인 국가는 ‘혼합형 체제’, 4.0 이하는 ‘권위주의 체제’로 분류되는데 미국과 한국은 모두 ‘불완전 민주주의’ 국가에 포함됐다.

최근 10년간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세계 20~24위를 오르내렸고, 지수도 8.13~7.92 사이를 오갔다. 2015년 부터는 ‘완전 민주주의’ 국가에 한 번도 들지 못했다. 2019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선거과정과 다원주의 부문 지수는 9.17로 높았지만, 정치 참여 부문 지수는 7.22로 낮았다. 정치 문화는 7.50, 정부 기능은 7.86, 시민의 자유는 8.24였다.

몰래 유출된 투표용지를 내세워 지난해 4.15 총선 사전투표 조작을 주장하며 선거결과 불복을 외치던 정치인, 정당의 대표가 국회의사당 난입을 시도하는 보수 지지층을 격려하던 1년 여전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이 최근의 미국 연방의사당 점령 사건과 오버랩 된다. 극단주의와 폭력에 점령당한 미국 연방의사당 난입 사건을 미국보다 나은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를 위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