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굶주리던 시절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출생신고가 늦게 되어 입학도 못하고 집에서 가사를 돕고 있었다. 1943년으로 왜정 말기 늦은 어느 가을날이었다. 윗방에서는 어머니와 누나가 가마니를 짜고 나는 아랫방에서 새끼를 꼬았었다.
그런데 가난하여 점심때가 지났건만 점심 준비는 하지 않고 권태증으로 누워있다가 살그머니 밖으로 나와 친구 찾아 놀러를 갔다. 하지만 친구를 찾기도 전에 헛간에 그득한 고구마가 눈에 번쩍 띄어 욕심이 발동하고 구미가 당겼다. 그래서 저고리를 벗어 펴고 주섬주섬 몇 개 싸들고 나오는데 친구 엄마가 보시고 저고리까지 빼앗겼다.
그 때문에 겁도 나고 무안하여 집으로 줄행랑하여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새끼를 꼬는 척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후 친구 엄마가 저고리를 들고 찾아와서 훈계인지 비아냥인지 아들 단속 잘하라고 명령을 하는 것이었다.
가슴은 두근 두근 걷잡을 수 없어 뒤숭숭한데 꾹꾹 눌러 참으며 새끼를 꼬았다. 그 순간 어머니가 손에 회초리 한 주먹을 들고 왔다. 그리고는 대뜸 “일어나서 종아리 올려” 하시기에 떨리는 손으로 바지가랑이를 치켜 올렸다.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벼락치듯 종아리를 내리치시면서 “도둑놈을 낳았으니 이일을 어찌 할꼬? 이찌할 꼬?” 하며 정신없이 내려치셨다. 나는 매가 어찌나 아프던지 엉엉 울면서 야속하여 원망하는 마음과 반항심이 생겨 항의하려고 고개를 쳐들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는 벌겋게 흘러내리는 피눈물이었다.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으며 아픔이 사라졌다. 그리고 과연 내가 ‘도둑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는 아무리 굶주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남의 물건에 욕심내거나 손대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그리고 “엄마, 다시는 이런 일로 마음 상하게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두 손 모아 빌었다. “어머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다짐을 하고 또 했다. 어머니도 나를 보듬고 한 없이 울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동안 친구들과 어울려 봄이면 보리 서리, 가을이면 과일 서리를 하면서 즐기는 것을 보통으로 여겼는데 남의 하찮은 물건이라도 소중함을 깨달았으며 내 것처럼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엄마의 사랑의 매는 맞는 아픔보다 때리는 아픔이 더 컸으며, 오늘도 흘리신 엄마의 피눈물 그 피눈물의 매가 무척 그립다. 그래서 다시 맞고 싶은 생각에 ‘어머니! 어머니!’ 하고 가슴으로 불러 본다.
배고팠던 어린 시절/친구 찾아 갔다가/헛간에 그득한 고구마/
허기가 발동하여/저고리에 주섬주섬/싸들고 나오는데
친구 엄마 보시고/저고리 째 빼앗겼지요
겁도 나고 무안하여/집으로 줄행랑
벌떡거리는 가슴 꼬옥/새끼를 꼬려하지만
뛰는 가슴 두근 두근/벌떡 벌떡 벌떡
어머니 회초리에/종아리가 터지고
피는 흐르지만/터진 종아리 보다
때리는가슴이/더 아파서
흐르는 피눈물/어머니가 그리워/외쳐 봅니다.
△ 정도연 씨는 그동안 독학으로 국문을 해득하고 한문을 익혀오다가 팔순이 가까워서 <시, 수필> 에 입문하여 창작에 몰입하고 있다. 그는 동양윤리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