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였다는 ‘이웃국가’

김은정 선임기자

삽화=권휘원 화백

2016년 이른 봄. 서울 대학로의 아르코 극장에 오른 연극 한편에 특별한 관심이 쏠렸다. 원로극작가 노경식 작 <두 영웅> . 2007년 국립극장이 의뢰해 완성되었지만 그해에 공연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10년 동안 텍스트로만 남아 있던 작품이었다.

<두 영웅> 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조선과 일본의 두 영웅 사명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다. 1604년 조선에서 탐적사로 파견된 사명대사가 두 차례의 왜란으로 잡혀간 선량한 조선인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이어가는 협상의 긴 여정을 통해 나라를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진정한 영웅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역사극이다. 극중 사명대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쟁 중단 선언이 진짜인지 진정으로 화해할 뜻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파견된 일종의 특사다. 1604년 일본에 들어가 1607년까지 3년 동안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적국 일본에서 보내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신뢰를 이끌어내 마침내 협상을 성공시킨 사명대사의 이야기가 바탕이다.

400년도 더 지난 이 역사 이야기에 관객들이 주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잠자고 있던 극본을 깨운 것은 문화관광부의 연극인 지원 프로젝트였다. 10년 가깝게 묻혀 있던 극본이 생명을 얻게 되고 거기에 원로 중견 배우까지 기꺼이 의기투합해 나섰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를 불러오기 족했으나 무대 위의 <두 영웅> 을 주목하게 한 동력은 또 있었다.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외교 협상을 벌였으나 협상은 결렬되고 한일 관계는 오히려 악화된 시대적 환경이 그것이다.

작가가 2016년에 발표한 작품 <세 친구> 가 최근 한국극작가협회의 <한국희곡명작선> 에 꼽혀 출간됐다. 유치진 차범석으로 이어지는 정통 리얼리즘의 계보를 있는 작가가 발표한 작품은 40여권. 한일관계의 얼크러진 역사를 주목해 시대적 상황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 적지 않다. <세 친구> 역시 일제강점기 친일예술가들의 행적을 그린 이야기다.

책머리에 ‘친일토착왜구 적폐청산’이나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가겠다는 작가의 강한 메시지가 있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바로 잡아지지 않으니 한일 역사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따로 있을 리 없다.

최근 발간된 ‘2020 국방백서’는 일본에 대한 정의를 ‘동반자’에서 ‘이웃국가’로 격하했다. 한국과 일본이 언제 진정한 동반자였던 시절이 있었던가 되돌아보면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