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이의 삶

백성일 부사장 주필

삽화=권휘원 화백

입춘이 지났다. 바람결이 차가워도 봄 햇살 기운이 느껴진다. 1년 이상 코로나19로 숨죽인 채 살았지만 새해에는 백신 접종이 가능하고 치료 약이 속속 개발될 전망이어서 희망적이다. 누구나 새해가 오면 장밋빛 계획을 세운다.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꼭 등산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란 말처럼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흐지부지하고 만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억새마냥 마음이 자꾸 흔들려서 실천을 못한다.

부안 내변산 월명암 입구에 법보장경에 나오는‘지혜로운 이의 삶’이 적혀 있다. 오가는 등산객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하면서 그 깊은 뜻을 반추해 보게 한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수양이 덜 된 탓에 잘난체하거나 교만할 때가 많다. 자기도 모르게 불리할 때는 한없이 비굴해지는 속성이 있다. 그때마다 역량이 부족해서 그렇게 된 거라며 자신을 미워한다. 어려움을 피하려고 그런 경우가 있다.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얼마나 멋진 말인가. 생각이 깊지 않은 사람은 귀가 얇아 무슨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생각지 않고 쉽게 행동한다. 그러다 보면 자주 실수를 한다. 경솔한 행동으로 손해를 보는 일이 많다. 금쪽같은 시간을 아껴 써야 할 상황에서 허투루 행동하다 보면 손해를 본다.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말은 할 말 안 할말이 따로 있다. 말에도 씨가 있다. 말 하는 대로 된다는 뜻이다. 그게 세상 이치다.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는 말처럼 말을 자주 하다 보면 실언하고 기가 빠진다. 여자들은 말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지만 말 많이 하다 보면 무슨 말을 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허언을 하게 된다. 말 많이 한 사람은 신뢰도가 낮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란 말처럼 행동으로 옮기면 인격으로 쌓인다.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세상살이에 가장 중요한 게 겸손이다. 겸손한 사람한테는 미워하거나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없다. 자기를 누운 풀처럼 낮추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스마트 폰으로 네이버나 다음으로 들어가서 검색해보면 뭐든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SKY대학 나왔다고 많이 배웠다고 우쭐댈 일도 아니다.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경험이 풍부해 지혜를 많이 쌓은 사람이 있다.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물질을 우선시하는 세태지만 그래도 선비적 사고와 상인적 기질을 잘 융합시키면서 살아야 한다. 지산겸(地山謙)은 주역 64괘 가운데 15번째 괘로서 마치 높은 산이 땅 아래에 파묻혀 있는 것 같은 형상이다.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 형태로 세파를 이겨낼 백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