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에 이어 ‘학폭투(학교폭력, too)’의 시대가 오는가 싶다. 트롯 경연대회 출연자가 학폭 가해자로 밝혀져 방송에서 하차하더니, 쌍둥이 스타 배구선수들은 무기한 출전정지로도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아 영구퇴출을 요구하는 국민청원까지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최근 한 달 사이 폭력 관련 이슈가 많았다. 당 대표가 같은 당 국회의원을 추행하여 제명되기도 했고, 법무부장관 청문회에서는 후보자의 학창시절 패싸움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볼썽사나운 사건들이지만 일련의 사태에서 분명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바로 우리 사회에서 사적 폭력에 대한 관용도가 점점 낮아진다는 점이다. 예전처럼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는 여론이 우세했다면 방송 하차라는 단호한 결정이 내려질 이유가 없다. 30여 년 전 쌍둥이 배구선수의 모친이 속했던 배구팀 선수들은 피멍든 허벅지가 신문에 실렸지만, 경위서 제출과 감독 교체로 사건은 유야무야되었다. 과거 민주화운동권 내부 성폭력은 대의와 조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은폐되기 일쑤였다. 정치인이 자서전을 내면서 어린 시절 패싸움을 기록했다면 불우한 환경을 극복한 비행청소년의 아름다운 인간승리라거나 인간적인 면모 등 긍정적인 모습으로 독자에게 인식되기를 기대했으리라.
단기간에 이처럼 사적 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관용도가 낮아진 까닭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변화의 기저에서 우리 사회가 점차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법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고 싶다. 그리고 이는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는 현상과 동전의 앞뒷면 관계이므로 최근의 검찰·사법개혁 요구와도 맞닿아있다.
폭력성은 인간에 내재되어 있다. 다만 문명사회는 필요에 따라 권력을 통해 폭력의 발현을 억압하기도 하고, 또는 이를 정당화시켜 권력과 결합하거나 조직화한다. 가령 군사독재 정권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했고, 마찬가지로 민주화운동은 독재 타도를 외쳤기에 화염병을 던져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한 폭력도 실제로 행사되면 구성원의 폭력 민감도를 낮추고 관용도를 높인다. 쉽게 말해 폭력은 전염된다. 가령 안보 위협을 이유로 군대 규율을 강화하면 가혹행위 등 부조리한 군기문화가 생기고, 공산국가에 맞서 스포츠로 국위 선양의 성과를 내려면 체육인은 맞으면서 운동을 하게 된다. 이처럼 실제 행사되는 폭력 앞에 가해자와 피해자, 목격자와 방관자 모두 폭력에 둔감해지며, 이는 다시 각자의 일상 속에서 주취폭력, 가정폭력이나 체벌처럼, 또는 이를 경험한 자녀의 학교폭력처럼 세대를 따라 전이되어 내려가면서 폭력에 관대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반대로 폭력을 수단으로 저항할 대상이 줄어 더 이상 폭력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 정당한 공적 권위가 사적 폭력을 제어하여 현실에서 폭력이 발현되지 않는 사회는 곧 법치주의가 뿌리내려 평화와 안정을 구가하는 사회다. 이 때 구성원들은 더 이상 사적 폭력을 관용할 필요 없이 이를 제어하는 공적 권력의 정당성만 신경 쓰면 족하다. 이번 학폭투 사태를 보면서 검찰과 법원에 대한 개혁 요구가 함께 떠오르는 이유다. 사적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사람을 강제로 조사하고 잡아 가두는 공적 폭력을 행사하는 기관의 공정성이 한층 강하게 요구됨이 당연하다. 폭력이 만연하던 시절에는 법원, 검찰이 인권의 보루였을지 모르나, 이제는 그 폭력성에 시민들이 위협을 느낄 만큼 우리 사회가 진보한 것이다. /박지원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