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조선시대 양반의 솔직한 감정을 엿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경목 교수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
부안김씨 우반종가 소장된 간찰 자료 통해 양반 일상과 감정 살펴
유배당한 관리들의 고달픈 생활과 그 과정서 드러난 뻔뻔함과
축첩(畜妾)의 목적, 청탁으로 인한 짜증 등 다양한 감정 엿볼 수 있어

“저는 관찰사의 농간으로 지금 막 영남의 읍에서 유배지를 옮기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혹 하룻길을 갈 하인과 말을 빌릴 수 있겠습니까? 계묘년 12월 1일 저녁 누제 머리를 조아리며 아룁니다.”

조선 경종 시기, 부여현감 권응이 부안 김씨 집안의 김수종에게 전한 편지다. 급박함이 느껴진다. 노비와 말을 구하지 못할 경우, 양반 입장에서 엄청난 고통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유배지를 옮길 때, 동행하는 나졸배들은 유배자의 행색이 초라하면 곧바로 무시하고 학대하기 일쑤였다. 양반출신 관료들은 이런 상황을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었으며 미리 대비하려고 했다.

이같이 조선시대 양반의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조선 고문서 연구자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전경목 교수가 펴낸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이다.

저서에서는 부안 김씨 우반종가에 소장된 간찰을 활용해 양반의 일상사와 다양한 감정을 살핀다.

특히 유배를 경험했던 양반들에게서 드러나는 감정의 변화는 흥미를 더해준다. 유배지에서 힘들 때는 지인들에게 말, 노비, 생활용품 등을 빌리기 위해 온갖 하소연을 하다가, 해배되면 은혜를 기억하며 후견인들과 계속 편지를 주고받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권응도 해배된 후, 말과 노비를 돌려보내는 편에 부친 감사 편지를 끝으로 김수종과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않았다.

전경목 교수는 “서울로 돌아간 유배자들은 유배지에서 느낀 고마움 대신 그곳에서 겪은 괴로움만 고통한 기억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양반의 솔직함과 비통함, 집요함도 드러난다. 여과없이 분출되는 이런 감정들은 삶의 현실과 버무려지며 고스란히 나타난다.

인조반정 공신인 원두표는 자신의 며느리가 임신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안출신 명망가인 김홍원에게 첩을 중매해주기를 당당하게 요청하기도 하고, 김홍원의 큰 아들인 김명열은 평산부사로 재임하던 도중 아내를 잃자 친한 지인에게 여과없이 슬픔을 드러낸다.

밀려드는 청탁을 거부하지 못하는 현실과 약자 입장에서 억울함을 느끼는 경우도 나온다. 김명열은 평산부사를 지낼 때 토지, 노비, 농장관리 등 여러 청탁을 받지만 사회적 관계망 때문에 외면하지 못하고, 상관인 황해감사에게 수 차례 휴가 요청을 거부당했어도 반발하지 못하는 현실을 답답해한다.

이밖에 일상에서 피할 수 없던 기근과 돌림병에 대한 공포, 서울 정가의 민감한 소식과 불안에 뿌리를 둔 유언비어, 누명을 피하기 위해 비빌의 흔적을 지워야만 하는 불안함 등도 세세하게 드러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전경목 교수는 조선시대 고문서 연구를 통해 일상사를 규명하는 데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고문서를 통해서 본 우반동과 우반동김씨의 역사> ,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숨은그림찾기: 유희춘의 얼녀 방매명문> , <조선후기 소 도살의 실상> , <조선후기 탄원서 작성과 수사법 활용> , <양반가에서의 노비 역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