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플라스틱 물병과 폐지를 들고 나와서 아파트 쓰레기 수거함에 구분해 넣고 길을 나섰다. 요즘 만보 걷기를 하고 있다. 오늘은 공원이나 천변이 아닌 시가지로 발길을 옮겼다. 직장이 있어 많이 다녔던 서남당 길로 접어들었다. 소서의 열기는 맥을 못 추케 했다.
조금 걸었는데 결국 등줄기는 땀으로 흠뻑 젖었고 이마에서도 자꾸만 땀이 횰러내렸다. 땀을 닦은 손수건이 금방 축축해졌다. 깊은 계꼭 물에 발을 담그고 수박이나 한 통 먹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쉬다가 옛날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화약골’로 접어들었다.
골목길 돌담 밑에 보기도 흉하게 생활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난잡할까 하며 가까이 다가가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쳐다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내 모습이 거울에 나타난 게 아닌가? 갑자기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은 마치 내가 쓰레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사람처럼 보였다.
벽면에 걸려았는 기다란 거울, 그 위에 써놓은 검정 글씨는 ‘양심 거울’이었다. 양심을 버리지 말라는 말이다. 주위에는 CCTV도 있었고, 현수막도 쳐 놓아 분리수거를 계도히고 있었지만, 버리는 행동은 막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하늘이 알고 땅은 안다. 심지어 과격한 말까지 표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양심을 잃어버린 행동은 이웃들의 신경에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지저분하게 너부러져서 썩어가고 가고 있어 비위생적이다. 혐오감까지 준다.
양심은 어떤 행동이나 말이 자신의 마음에 그릇됨이 없는 도덕적의식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양심 거울은 자기 마음을 거울에 비춰보라는 뜻일 것이다. 깨끗하고 올바른 행동인가, 음흉하고 비뚫어진 행동인가를 반성해보란다. 사회공동체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조금은 불편해도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며 이윳과 사회에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남을 속이는 거짓말, 남몰래 버리는 행동, 공공시설물을 파괴하는 비행 등은 양심을 팔고 사회를 좀먹는 행위다. 거읗을 보면서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양심을 속이는 행동은 여기만 있는 게 아니다. 등산할 때 보면, 철부지가 아닌 알 만한 사람들인데 가져온 음식을 먹고 난 음식물 쓰레기룰 함부로 버리는가 하면, 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페트병이나 빈 술병, 과자봉지 등을 슬그머니 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부끄러운지 보는 눈을 피해 밑에 묻거나 나무 틈새에 숨기는 나쁜 마음도 있다. 건축폐기물을 산에 버리는 짓이나 기축 배설물을 냇물에 흘려보내는 비양심적 행동은 자기만 알고 이웃을 배려할 줄 모르는 잘못된 행동이다. 오늘날 자연은 산업발달과 비례하여 훼손되어 가고 있다. 냇물과 바다에 유입된 플라스틱이나 스치로폼, 폐비닐 등 작은 조각들이 조류나 어류의 뱃속에서 뭉쳐 나오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적이 있다. 놀랄 일이었다.
언젠가는 이들이 먹이사슬로 이어져 인간에게 해를 끼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아 우려스럽다.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 후손들이 이어받을 자연과 환경을 보전해 나가야 한다. 작은 일이지만 실천하는 양심이 꼭 필요하다. 공원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도 그냥 핀게 아니다. 누군가의 돌봄과 배려가 있었기에 훌륭하다. 환경을 살리는 적은 노력, 분리수거가 자기 양심과 지구의 미래를 살려낸다. 묵묵한 ‘양심거울’이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 신팔복 수필가는 중등교사로 퇴직하여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협회원, 진안문협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마이산 메아리> 등이 있다. 마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