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여는 시] 단골

문신

이발소 의자에 앉아 빗소리 들었다

일흔의 이발사도 같이 듣는지

가위질 소리가 못내 예전만 못하였다

몸 낮춘 빗방울들이

일흔 살의 느린 선율 같아 때때로 사무쳤다

아무렴,

견줄 바 없도록 귀밑머리는 짧아지고

이발소 거울 속에서 한 생이

우기처럼

종일 흘러가고 있었다

턱선을 긋는 면도날이 무디어지매

까닭을 물으니

귀에 빗물 고이는 날이 잦다고 하였다

아, 한 마리 초식동물이어라

조만간 이 우기를 혁명처럼 건너가겠구나

나는 이발의 표정까지도 차곡차곡

숫제,

여러 날 간곡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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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의 이발사” 생이 시 한 편에서 고단함과 땀방울로 절절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정감이 가는 「단골」 손님은 서로를 신뢰할 터. 무디어진 면도날과 느린 가위질 소리에도 “몸 낮춘 빗방울”처럼 “숫제” 이발사의 몸놀림에 사무치기까지 한다는 단골. “턱선을 긋는 면도날이 무디어지매”는 깨소금 같은 시의 맛을 체험한다. 거울 속에서 화자의 얼굴이 보인다. 빗물 고인 귓속에서 화자의 애틋함이 느린 선율에 이입되어 온종일 시가 유혹한다. /이소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