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조형예술가 박동삼 작가 ‘한지로 전주 치명자산 세계 최대 성미술품 제작’

기획부터 작업, 완성까지 2년여 걸린 ‘실루엣 124’
1801년 신유박해 등 순교한 124명 복자 모습 묘사
판각한 합판에 한지 넣은 후 주물처럼 떠내는 방식 구현
가로 18미터, 세로 5.2미터로 세계 최대 성 미술품 제작
5월4일 전주 치명자산 평화의 전당 로비에 설치될 예정
“한지로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예술작품 현실화”
박동삼 작가 올해 10월20일 G20정상회담 한지작가로 초대

23일 완주군에 있는 작업실에서 한지 조형예술가 박동삼 작가가 작품 작업을 하고 있다. /오세림 기자

“한지는 재료라기보다 역사성과 정체성이 담긴 문화유산입니다. 우리 정신의 상징성과 포용력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유 유산인 한지로 작품을 많이 만들어 전 세계에 우리 문화의 가치를 드높이고 싶습니다.”

천주교 전주교구청에서 ‘성지의 정체성과 전주한지를 상징할만한 아이콘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아, 한지로 성미술품 작업을 하고 있는 한지 조형예술가 박동삼 작가의 다짐이다. 지난 23일 완주군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마무리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다양한 신자의 모습을 판각한 목판에 한지를 넣은 뒤, 이들을 주물처럼 다시 떠내는 과정이다. 완성된 작품은 부조형식의 입체적인 조형성을 갖는다.

작품명은 ‘실루엣 124’. 이름처럼 작품에는 교황청에서 시복을 기다리는 복자 124명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거나 무릎을 꿇고 있는 실루엣이 묘사돼 있다.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사람 얼굴에 눈, 코, 입을 묘사하지 않고 반추상적으로 선으로만 오롯이 표현한 점이다.

박동삼 작가는 “작품은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등 당시 종교탄압을 겪은 순교자들의 모습을 표현했다”며 “주로 선을 이용해 인물을 반추상적으로 표현했고, 작업의 이미지는 대상이 가지는 디테일한 부분을 생략하거나 절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업의 근간은 기호의 해체로부터 시작되며 자유롭게 상상하는 기회를 갖는다”고 부연했다.

작품이 완성되면 가로 18미터, 세로 5.2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현대적 성 미술품이 탄생한다. 지난 2019년 제작돼 경기도 의정부교구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걸린 ‘아멘’ 작품이 있지만, 실제 규모로는 이 작품이 가장 크다는 게 박 작가의 설명이다.

작업 기간은 기획부터 완성까지 2년이 넘는다. 작품은 오는 5월 4일 전주 치명자산 성지에 지난해 신축된 평화의 전당 로비에 설치될 예정이다.

박동삼 작가가 지난 23일 완주군에 있는 작업실에서 목판에서 떠낸 한지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박동삼 작가

박 작가는 “순교자들이 신앙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이유를 오롯이 드러내는 게 작품의 본질”이라며 “이는 개별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즉 “내 삶의 가치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찾는 작업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작품의 재료로 쓰인 한지가 가진 경쟁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한국 최대의 문화자산인 한지는 세계적인 예술작품으로도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작가는 “바티칸이나 대영박물관 등에서 고문서 복원에 기존에 사용하던 일본 전통 종이인 ‘와시’보다 한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화두를 던졌다.

이어 “한지조형작품도 마찬가지로 독일, 미국 등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역사성이 깊은 한지를 토대로 세계문화유산의 자산이 될 수 있는 예술작품을 현실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작가는 독일 국립카셀미술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으며, 손기정기념관건립 컨텐츠부문 자문위원, 한지산업지원센터(전주)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개인전은 “Silhouette”(갤러리 초이, 서울)을 비롯해 모두 14회를 열었으며, 단체전은 “Human and Nature”(Kim시 갤러리, 독일 키른) 등 국내외 전시에 다수 참여했다. 수상경력은 제8회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동상, 독일 카셀미술대학교 “Rundgang Preris”, 동경국제트리엔날레 입선이 있다.

박 작가는 오는 10월 2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G20정상회담에 한지 조형전시작가로 초대받아,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