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피자데이

강인석 논설위원

삽화=권휘원 화백

매년 5월 22일은 ‘비트코인 피자데이’다. 비트코인 등장 초기인 2010년 5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사는 ‘라즐로(laszlo)’라는 닉네임의 비트코인 포럼 이용자가 1만 비트코인을 피자 두 판에 판매한 날을 기념해 정해졌다고 한다.

라즐로는 비트코인이 실물경제에서 사용 가능한지 시험하기 위해 그 해 5월 18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1만 비트코인을 줄 테니 라지 사이즈 피자 두 판을 사 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고 나흘이 지나 한 영국인이 피자값 30달러를 지급하고 비트코인 1만개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 가격으로 따지면 무려 6200억 원이 넘는 비트코인을 고작 3만3000여 원에 판 셈이다. 첫 현물 거래가 이뤄졌을 때보다 약 2000만 배 치솟은 시세다.

‘1만 비트코인과 피자 두 판의 거래’는 비트코인이 결제수단으로 사용된 역사상 첫 기록이 됐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이 날을 비트코인 피자데이라고 이름 짓고 매년 5월 22일 이벤트와 축제를 개최해 비트코인 상용화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을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첫 현물 거래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비트코인은 기존 금융시장의 격변을 이끌고 있다. 비트코인에서 시작된 암호화폐(가상화폐)는 최근 ‘투기와 투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암호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할 수 없고 투자 손실을 정부가 보호할 수 없다. 그림을 사고 팔면 양도차익에 대해 세금을 낸다. (청년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잘못됐다고 어른들이 얘기해 줘야 한다”고 밝히면서다.

실체가 없어 손실을 보호할 수 없다면서도 과세 필요성은 인정하고, 젊은층의 암호화폐 열풍을 꼬집은 금융 수장은 다음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청원글의 주인공이 됐고 이틀 만에 10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청원글을 올린 30대 직장인은 “어른들은 부동산 투기로 자산을 불려놓고 가상화폐는 투기니 그만둬야 한다고 한다. 깡패도 자리를 보존해 준다는 명목 하에 자릿세를 뜯어간다. 하지만 (암호화폐) 투자자는 보호해줄 근거가 없다면서 돈은 벌었으니 세금을 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과세 논란 속에 아이러니하게도 암호화폐는 체납 세금 징수의 유용한 수단으로 떠올랐다. 국세청과 서울시, 대전 유성구 등이 암호화폐 압류를 통해 고액 체납세금을 속속 징수하고 있다. 암호화폐 압류 사실을 안 체납자들이 버티기를 포기하고 밀린 세금을 내고 있다. 실체도 없는 암호화폐가 현실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암호화폐는 공직자 의무등록대상 재산에도 포함될 전망이다. 민주당 신영대 국회의원(군산)은 지난달 25일 공직자 의무등록대상 재산에 가상자산(암호화폐)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당한 금융자산의 길을 향한 암호화폐의 멀고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