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코로나 시대의 인간관계 - 배우고 훈련하는 새로운 기회의 장

소해진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조합원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있다. 처음의 혼란과 두려움을 넘어서, 이제는 마스크를 쓰는 일상과 건물에 출입할 때마다 체온을 체크하고, 개인 정보를 기재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동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는 일보다 인터넷 배송이 안전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유지해왔던 일상의 변화를 겪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일상을 영위해왔는지 새삼 반추하게 된다. 쉼 없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과 자연에 대한 착취는 결국 생태계를 위기에 빠뜨리고, 인간 스스로도 위험에 빠졌다.

황사로 인해 뿌연 하늘.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은 취약한 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보편적인 인간상은 자연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성향으로 여겨지지만, 재난 앞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점을 자각하게 된다. 작년 여름을 기억한다. 봄마다 찾아 왔던 황사와 미세먼지는 어느새 사계절 내내 계속되었다. 코로나19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로 확장되었던 시기, 코로나로 공장은 멈추었고 모처럼 푸른 하늘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실제 코로나19 여파로 초미세먼지는 15% 감소했고, 세계의 공기 질은 개선되었다. 연일 감염인 수가 증가하고, 백신 없는 질병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던 사람들의 죽음은 곧 사람들이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됐음을 의미했다. 공포와 패닉 속에서 공장은 멈추었고, 동식물들은 거리를 활보했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 죽음이 창궐하던 시기, 사람들 틈에 치이던 동식물들이 잃어버린 자리를 다시 되찾고 있었다. 막상 나에게(인간) 위험이 닥쳐오니, 너(자연)가 보이기 시작한다.

맑은 하늘. 코로나19 여파로 초미세먼지가 15% 감소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우리는 제한적인 관계를 하게 된다. 전처럼 밀집된 장소에서 대규모 강연과 공연, 집회, 포럼은 진행할 수 없다. 그 안에서 인간관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사적인 공간에서 폭력이 증가했다. 한 공간에 많은 시간을 지내다 보니, 그 안에서 아내, 어린아이, 노인과 같은 가정 내 취약한 사람이 폭력의 대상이 된다. 이들을 위한 사회 보장제도 잘 구현된다고 해서, 순식간에 상호 존중하는 관계가 되진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와 상대를 대하는 태도이다. 관계의 윤리와 거리를 배워야 나와 동시에 타자와 잘 지내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이는 훈련과 배움의 과정이다.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떻게 관계하고 어떤 동기로 만나고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이를 살피는 일은 현재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욕구와 에너지가 무엇인지 확인해볼 수 있는 길이다.

 

필자는 작년 겨울 ‘단지 공감’(이하 단감)이라는 이름의 심리 서적 낭독 커뮤니티를 시작했다.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우리들은 각자의 집에서 주 1회 저녁 시간에 만났다.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후 다 함께 식사를 먹으며 1시간 정도 사소한 일상을 나누고, 번갈아가며 한두 페이지의 책을 낭독하고 감상을 공유한다. 심리 서적을 읽는 일은 표면 말하기에 머물러있는 것들 너머로 자신의 상태, 감정, 욕구를 살피는 일로 귀결된다. 그러다 보면 지금 여기에서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현재 내 삶의 이슈는 무엇인지, 그때 알아차리거나 표현하지 못했던 주요한 감정들, 갈등 상황을 촉발했던 숨은 욕구들은 무엇이었는지 새롭게 발견하는 장이 된다.

지면에 이렇게 모임을 소개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관계의 본질적인 요소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편안하게 말할 수 있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분명 상대와 함께 시간을 나누면서 대화를 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편안한 상태라야 가능하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타인을 수용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단감에 참여하는 튬은 “공감에 대해서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습하는 경험이었다. 제가 얼마나 온전한 공감을 잘 못하는지 그리고 잘 못 받아왔는지 깨달았다. 집에 가면 아 오늘 내가 한 그 말은 공감이 아니라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이었구나 하고서 후회하는 일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공감은 무조건적 지지나 응원이 아니다. ‘당신은 옳다’ 책 저자 정혜신 씨는 공감에 대해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모든 감정은 옳다. 마음과 느낌은 충조평판의 대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의 고갱이다”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어른이 될수록 자신의 기준대로 판단하고 정의한다. 입은 여는데 귀는 닫힌다. 그리고 감정을 숨기게 된다. 그러나 감정은 수많은 판단, 사고, 정동의 최종 심급이며, 이를 잘 표현할수록 깊은 대화의 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

제도와 가족 안에서 역할과 의무에 충실하거나, 이해관계로 얽혀있을 때 우리는 자주 외롭고 공허해진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시선들은 자기를 개방하고,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로나19와 같이 밖에 아닌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해서, 내 곁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관계를 훈련하며 상호 성장할 수 있는 관계들을 살펴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단감모임 동료 별은 “특히나 부정적인 정서에 대해서는 피하거나 빨리 전환하려고 했는데, 모임에서 내 감정에 대해 잘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대화에서 정말 전달하고자 하는 말은 감정이었다. 감정을 ‘솔직하게 상처주지 않게’ 전달하는 게 타인과 성숙한 관계를 맺는 방법인 것 같다”라고 전했다.

소해진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조합원

< 이 기사는 지역 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