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구도심, 영화의 거리가 다시 빨간색 플래카드로 채워졌다. 전주국제영화제를 알리는 오래된 풍경이다. 29일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는 5월 9일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문 자리에 48개국 194편의 영화를 초대했다. 영화제는 올해로 스물두 번째, 코로나19로 일상이 묶인 상황에서는 두 번째다. 해마다 영화팬들로 넘쳐났던 영화의 거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영화제의 일상(?)을 잃었지만, 전주영화제는 ‘영화는 계속된다’는 선언으로 축제의 희망을 외친다.
1990년대, 한국의 오래된 도시들은 구도심 황폐화의 위기에 처했다. 전주의 구도심 역시 그중 하나였다. 자치단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신도시 건설에만 집중한 탓이었는데, 구도심은 쇠퇴하고 신도시는 성장하는 불균형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구도심들은 각자도생을 위한 동력이 필요해졌다. 돌아보면 2000년 첫 막을 열었던 전주영화제는 그 동력을 여는 통로였다.
그때 전주영화제를 앞두고 전주시는 극장이 밀집되어 있던 구도심에 영화의 거리를 만들었다. 고사동 오거리 극장가를 끼고 있는 7백 미터에 이르는 도로였다. 전주영화제의 상징이 된 붉은색과 필름모양으로 도로를 포장하고 가운데에 전주국제영화제 로고를 새겨 넣었다. 가로등까지 영화제의 격에 맞게 들어서면서 영화의 거리는 관광객들이 들러 가는 새로운 명소가 됐으며 활기를 찾은 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여 스스로 동력을 만들었다.
새로운 옷을 입은 구도심의 귀환이 반가운 이유는 또 있었다. 영화의 거리 입구에 세운 ‘전주영화비’의 존재다.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개최를 앞둔 즈음, 전주 문화예술인들은 영화탑 건립에 나섰다. 1950-60년대, 서울 충무로와 함께 영화가 제작되었던 도시 전주의 영화사를 조명하고 자랑스러운 문화사로 기억되기를 소망하며 추진했던 사업이었다. 전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상이 만들어졌던 곳. 한국 전쟁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피아골’과 ‘아리랑’이 만들어졌으며 최초의 컬러영화 ‘선화공주’를 비롯한 당대의 흥행작 여러 편이 제작되었던 영화의 도시다. 영화비는 경제적으로 충족하지 못했지만 문화에 있어서만은 윤기 있고 따뜻했던 감성이 충만했던 문화풍토에서 성장한 전주 영화사를 기억하게 해주는 증표였다.
그러나 지금 영화비는 그 자리에 없다. 오거리에 또 다른 광장을 조성하면서 전주독립영화제작소 입구 비좁은 길목에 옮겨놓은 탓이다.
영화의 거리에서 만날 수 없는 영화비의 존재는 무색하다. 전주의 영화사를 기억하게 했던 증표, 영화의 거리를 더 빛나게 해주었던 영화비는 무엇 때문에 이 거리에서 가치를 잃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