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진 소나무숲 아래로 산새가 지저귀는 초여름, 고즈넉한 자연과 이웃하는 완주군 소양면의 한 전원주택에서 전북일보와 50년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독자를 만났다.
전주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지내고 20년 전 퇴직한 후 5년 전 이곳으로 이사와 아내와 함께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김계식(83) 시인은 여러번 언론에 소개될 정도로 이미 문단에선 정평이 나 있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매일 아침 운동화를 신고 아내와 함께 40분씩 빠른 걸음으로 동네를 걷는 일을 빼놓지 않고 있다. 운동을 다녀온 후 아침식사를 하고 나면 우체통에 신문이 배달되기를 기다린다고. 일기도 매일 쓰고 있다. 중학교 3학년 시절부터 이어온 그의 오래된 습관이다.
그는 ‘기록하는 일’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열정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왔던 각종 기록도 빛바랜 종이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자녀들의 학창시절 상장이나 가족사진도 새 것처럼 앨범에 넣어 정리해뒀다. 신문 스크랩이며 각종 기록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파일에 잘 넣어 보관해왔다. 덕분에 그의 서재는 한 가족의 역사가 담긴 박물관이자 보물창고가 됐다.
총명불여둔필(聰明不如鈍筆). 아무리 똑똑하고 기억력이 좋아도 글씨로 적어 놓은 것을 당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가 좌우명으로 삼은 말이다. 신문 읽기는 이 같은 신념을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길이었다.
한평생 교직생활을 하면서 디지털 교육을 받고 이를 활용한 업무도 많이 해왔지만 신문 읽기에는 기술로 대체되지 않는 가치가 있었다. 그의 꼼꼼한 성품이 발현되는 순간이다.
“전북일보를 구독하기 시작한 게 73년도니까 벌써 50년 가까이 흘렀네요. 서른이 갓 넘어 동료들보다 일찍 교감을 맡았는데, 국어교사로서 교단에 서면서 학생들에게 신문을 통해 읽고 쓰는 공부를 가르쳤던 기억이 납니다. 학생들이 자기가 사는 사회를 제대로 보려면 신문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게 요샛말로 ‘NIE(신문활용교육)’이라고 하더군요.”
김 시인은 “매일 아침 전북일보 오피니언면에 연재하는 ‘새 아침을 여는 시’나 ‘금요수필’, 논설은 매일 빼놓지 않고 정독하고 있다”며 “아는 문인들의 글이 실리면 전화를 걸어 격려해주기도 하는데 그게 하루 일과중 하나”라고 했다.
“이 먼 곳까지 신문을 배달해줘서 고맙고, 공 들여 기사를 취재하고 잘 편집해 신문을 만들어준 덕분에 편히 받아봅니다. 우리 집이 외진 동네라 우편을 통해 조간 신문을 받아보는데 인터넷으로 기사를 볼 수 있어도 종이신문을 받아서 지면을 넘겨가며 활자 하나하나 음미하는 맛은 포기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년 치 구독료도 연초에 다 내버렸지요.”
다음 세대들에게도 신문 구독을 추천하고 싶다는 김 시인은 “요즘 인터넷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정보와 지식을 얻는 일이 무척 손쉬워졌지만 그게 좋은 현상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정론을 제대로 보고 사회 면면의 현상을 이해해 내 것으로 익히려면 신문 읽기만한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창간 71주년을 맞은 전북일보가 세상 면면을 밝히는 사회의 목탁으로서 계속 정진해주길 바랍니다. 독자들은 기사 하나에 울고 웃어요. 우리 지역에 밝고 희망찬 이야기가 좀 더 많이 생기고 알려져서 많은 이들의 삶에 좋은 변화가 생기도록 지역 정론지로서 긍지를 가지고 전북일보를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단신 하나에도 기승전결이 있듯 좋은 시작에는 선한 끝맺음이 뒤따라야 한다는 시인의 말에는 무엇이든 손쉽고 빠른 시대지만 자라나는 세대가 신문을 읽고 깊이 생각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