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호 시집 ‘나이테의 무게’…원로시인의 인생 단상

아흔 바라보는 시인, 목숨 같은 시편들

“눈 감으면 이것이고 저것이고/ 이승의 모두가 지워지는 거지만// 뜯겨버리고 지워질망정/ 색깔 고운 시를 써보려// 버둥거리는 꼬락서니가/ 미망의 나를 지우는 짓거리인 거다” (‘자투리 시간 때우기’ 일부)

아흔을 바라보는 조기호 시인이 <나이테의 무게> 란 신작 시집을 펴냈다. 원로시인의 인생 단상이 녹아든 작품이다.

조 시인은 시 쓰기에 대해 “남은 목숨을 달력 뜯듯이 하루하루를 뜯어서 날려 보내는 고된 작업”이라고 말했다. 여생을 ‘자투리’ 날짜 혹은 시간이라 여기며 하루하루 목숨과도 같은 시편을 뱉어내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4권의 책을 출간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는데, 일각에서는 “저승길이 뭐가 그리 바빠서 서두르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외로움 같은 건 그런대로 무던히 견딜 만한데, 이제 몇 발짝 남지 않은 자투리 시간 보내기가 참으로 난감하다. 내가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글 쓰는 것밖에 없다”고 고백하며 시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번 시집은 총 8부로 105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그는 지나온 인생을 담담히 술회한다. 그러면서도 “몇 발짝 남은 시간 명작 아니어도/ 마음에 찬 좋은 글 한 줄만// 얻을 수 있다면 그까짓 목숨쯤/ 시방 죽어도 무던한 마무리”(‘자투리 시간 보내기’ 일부)라고 말한다. 인생의 ‘마지막 향기’를 뿜어내고 싶은 시인의 열망이 느껴진다.

전주 출신인 조기호 시인은 전주문인협회, 문예가족, 전주시풍물시동인 회장을 역임했다. 1992년 <저 꽃잎에 흐르는 바람아> 를 시작으로 <바람 가슴에 핀 노래> , <산에서는 산이 자라나고> , <가을 중모리> 등 23권의 시집을 펴냈다. 장편소설 <색> , 동시집 <오월은 푸르구나> 도 냈다. 목정문화상, 후광문학상, 전북예술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