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던져진다. 태양계 끝에서 바라보면 해쓱한 푸른 점에 맡겨진다. 첫 울음은 이 땅에서 수행해야 할 미션을 말하고 있지만 들을 수 없다. 가보지 못한 곳이 수두룩하다. 언제든 아픔이 끓는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세포에 감겨있는 디엔에이를 풀면 명왕성(소행성 134340)까지 다다른다. 그 속에 해야 할 일과 잘 하는 일이 담겨있다. 어떤 에이아이도 모퉁이를 돌아가는 사랑의 아련한 그림자에 가슴 뛰지 않는다.
1922년 6월 21일,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 내무 인민위원회 소속 긴급 위원회에 출두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에이모 토울스의 두 번째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신사』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름을 말하라는 비신스키 검사에게 백작은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 경마 클럽 회원, 사냥의 명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 쓸데 없는 그런 작위와 칭호들은 얼마든지 가져도 좋소”라고 말하는 검사에게서 백작의 나락을 읽을 수 있다. 백작은 죽을 때까지 메트로폴 호텔을 나올 수 없다. “한 걸음이라도 호텔 밖으로 나간다면 총살될” 것이다.
백작은 학문과 사회생활로 다져진 품격을 지니고 있고, 문학를 사랑하며,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진 그야말로 ‘신사’다. 자유로움을 가지려면 자유롭지 않은 상태를 겪어봐야 한다는 듯 그곳은 쓰라린 일로 가득하다.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가려면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해야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자신의 날개로 난다.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 입에 갈대를 물고 나는 기러기처럼 지혜를 다해 허허로운 들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세우고, 꽃을 피운다. 백작은 호텔에서 만나게 될 니나와 그녀의 딸 소피아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경제적 숙명, 문화, 지식, 심리, 사회, 신체, 언어의 감옥을 넘는다.
“깃펜으로 펜싱을” 하는 백작은 “우리 모두에게서 장점만을 찾아내고자 하는” 사나이다. 소피야가 “달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다 하더라도 음 하나하나를 다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현명한 지혜를 긍정적인 자세”에서 찾으려 한다. 백작은 “똑바른 자세는 침착성과 참여 정신의 소유자라는 느낌”을 준다며, “6미터 되는 방에서 50킬로미터”를 걷는다.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의 궁정 만찬 모임에 갔을 때 그를 헬레네 옆에 앉히지 않았더라면 트로이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며, 자리 배치의 중요성을 말한다. 백작은 “소량의 후추가 스튜를 변화시키듯, 온도계의 미세한 변화에 의해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는 “한 번도 일정을 정해놓고 살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고, 점심 식사 전에 온전히 충실한 시간을 보냈으므로 오후에는 현명한 자유로움을 누려야 한다고 믿었으며, 시작과 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들에 몰입해야 한다”라고 생각한 신사였다.
사람을 보는 그의 눈은 버들가지의 눈을 닮았다. “서성거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첫인상은 하나의 붓 터치가 우리에게 보티첼리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칵테일의 재료는 “각자의 농담에 웃어줄 수 있고 각자의 실수를 눈감아줄 수 있는, 그리고 대화 중에 서로에게 소리 지르지 않는” 두 가지로 한정되어야 한다. 부모는 “아이를 안전하게 키움으로써 목적 있는 삶을, 그리고 신이 허락한다면 만족스러운 삶을 경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하고, “우려를 표명한 다음에는 세 발짝 물러서야” 한다. 우정이나 유무 보존의 법칙을 말하기도 한다. “우정의 지속 기간은 결코 시간의 흐름에 좌우되는 게 아니다.” “베토벤을 귀먹게 만들고 모네를 눈멀게 만든 바로 그 신이 우리에게 준 것을 나중에 와서 반드시 회수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경제와 심리에 우레를 친다. 백작이 속삭인다. “목욕부터 해. 뭘 좀 먹고 와인도 한잔하라고. 그리고 밤새 푹 자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