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되었다. 91년 지방의원에 이어 95년 단체장을 뽑았고 교육감 선거는 2010년 지방선거와 함께 통합 실시했다. 아직도 무늬만 지방자치지 재정권을 중앙정부가 쥐고 있어 제도개선이 급하다. 87년 헌법체계로 국가가 운영되지만 빠른 사회변화에 제대로 대응을 못한다는 비난이 나오면서 헌법개정의 당위성이 제기된다. 대통령 한테 과도하게 권한과 힘이 쏠려 균형적인 국가발전에도 장애로 작용한다.
그간 관치를 벗고 유종근 강현욱 김완주 송하진 순으로 민선도백이 뽑혔지만 도민들 중에는 명암이 엇갈린 유종근 지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지사로 떠올린다. 그 이유는 김대중 대통령 때 대통령 경제고문으로 IMF환란극복에 앞장서면서 그의 존재감을 국내외에 알렸기 때문이다. DJ권유로 1987년 정계에 입문한 유 지사는 별의 순간을 잡고서 실세 지사로서 소리문화전당을 짓는 등 종횡무진했다. 하지만 당내 기반이 약한 유 지사가 대권도전에 나선 게 패착이었다. 당시 DJ 때 광주 전남 권력실세들이 유 지사의 거침없는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브레이크를 걸고 나서면서 동력을 상실했다. 모처럼 만에 전북의 정치적 위상을 올려놓았지만 나중에 뇌물수수로 5년간 영어의 몸이 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무주리조트와 양수발전소 건립 당시 환경운동가로 활약했던 김세웅 전 무주군수가 도의원으로 정계 입문해 3선민선군수가 된 것은 하나의 성공신화였다. 중학교 밖에 안 나온 그가 방송통신고를 졸업하고 나중에 한양대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전주에서 국회의원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젊은 패기와 스마트한 두뇌 때문에 가능했다. 주경야독하며 현장중심행정을 펼친 것이 적중했다. 군수재직 때 무주 남대천 수해복구를 깔끔하게 처리한 것도 돋보인다. 오늘날 무주를 이 만큼 경쟁력 있는 농촌군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그의 공로다. 학 경력이 일천해 주위로부터 군정을 제대로 이끌 수 있겠느냐는 따가운 질책도 받았지만 모든 게 기우로 끝났다. 개천에서 용 났다면서 그의 성공신화를 추억한 도민들이 많다. 태권도원을 유치하고 2014년 동계오륜을 유치하려고 무주에서 서울을 거쳐 춘천까지 군민들과 천리행군을 강행한 것은 전북인의 끈기를 보여준 귀감이었다. 그가 당시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이준석이 국민의 힘 당 대표가 된 것은 전북에 시사한 바가 크다. 그간 전북은 광주 전남 정치권에 밀려 아무것도 못했다. 주는 것도 받아먹지 못할 정도였고 제몫 찾기도 실패했다. 역대 시장 군수들과 지방의원들이 한 일을 보면 부끄럽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단체장이 되었는가 뽑아준 손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민주화 운동했다고 뒷전에서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한 사람과 고위직 지냈다고 목에다 힘이나 준 사람은 필요없다. 겸손과 섬김의 정치를 할줄 아는 인물이 대표가 돼야 한다. 세상을 바꿔 놓겠다는 동학혁명정신을 이어나갈 혁신적인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지금도 유 전지사와 김 전군수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