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 공립박물관 대다수가 박물관 소장품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에 엄두도 못낸 채 시설유지에 급급한 모양이다. 관광객들에게 지역 특성을 알리고 지역민의 문화향수 기회 확대 등을 기대하며 설립한 공공박물관이 부실한 운영으로 지역사회로부터 외면을 받아서야 될 일인가.
공립박물관의 부실한 운영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박물관 운영에 필수적인 학예사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문제가 크다. 박물관은 기본적으로 소장품을 확보하고 소장품을 활용하는 활동을 하는 데 학예사가 그 중심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도내 22곳의 공립박물관에 근무하는 학예사는 29명으로, 박물관당 평균 1.3명에 불과하다. 전주역사박물관과 김제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이 3명으로 그나마 나은 편이며, 나머지 박물관은 1~2명의 학예사를 두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익산 입점리고분전시관과 순창장류박물관, 전북산림박물관은 학예사가 아예 없다. 학예사를 보유한 박물관도 학예사의 절반 가까이가 계약직의 불안정한 신분이다. 전문인력 부족으로 소장유물의 체계적 관리가 버거운 상황에서 기획전시나 연구·교육 등 박물관의 다양한 활동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에는 지자체 단체장이 박물관을 그저 장식품 정도로 여기는 데 있다. 단체장들이 박물관을 유치할 때 치적으로 내세우고선 막상 설립 뒤엔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적으로 지자체 예산에 의존하는 공공박물관으로선 단체장의 의지가 없으면 별 도리가 없다. 실제 도내 공공박물관 한 곳당 예산은 인건비를 제외하고 연간 평균 2000~3000만원 정도란다. 이 정도 예산으론 제대로 된 유물 한 점 구입하기 어렵다.
지자체 예산에 의존하면서 자치단체장이 박물관장을 겸직하는 사례도 많다. 고창 고인돌박물관과 판소리박물관은 고창군수, 무주 곤충박물관은 무주군수, 정읍시립박물관은 정읍시장, 진안 역사박물관과 가위박물관은 진안군수가 관장을 겸직하고 있다. 문화재 보존·관리 등 박물관 경영이 전문적인 영역임에도 학예사도 변변히 확보하지 못한 데다 관장직까지 단체장이 맡는 상황에서 어찌 박물관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전문적 운영체제 확립을 통해 공공박물관의 질적 발전을 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