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보다 개가 낫다’
19세기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Schopenhauer·1788~1860)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반려견 푸들 한 마리와 살았다고 한다. 그와 처음 만난 반려견은 화풀이용 이었던 것 같다. 당시 독일 철학계를 석권하고 있던 헤겔에 대한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쇼펜하우어는 반려견의 이름을 ‘헤겔’로 지어 화가 날 때마다 욕을 퍼부으며 화풀이 했다고 한다.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가 쓴 책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에는 쇼펜하우어의 반려견 이야기도 소개돼 있다. 헤겔에 대한 적개심을 반려견에 표출했던 쇼펜하우어였지만 반려견의 충직함에 감동해 개가 인간보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쇼펜하우어는 반려견 이름 헤겔을 인도의 성전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용어인 ‘아트만’(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참된 자아)으로 바꿨다. 쇼펜하우어는 “거짓에 의해 흐려지지 않은 개의 맑은 눈에서 세계의 영혼을 본다”고 말했다고 한다. 세상과 사람을 혐오한 염세주의, 염인주의에 빠졌던 쇼펜하우어도 반려견 앞에서는 마음이 따뜻해졌나 보다.
KB금융 경영연구소가 내놓은 ‘2021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반려동물을 기르는 우리나라 가구는 604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29.7%에 달한다. 반려인은 1448만 명으로 국민 4명 중 1명 이상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
내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1500만 명에 달하는 ‘펫심’을 잡기 위한 대선주자들의 구애 전략도 한창이다.
민주당 대선 경쟁에 나선 이낙연 후보는 서울 보라매공원 반려견 놀이터를 찾아 “동물을 물건으로 분류한 민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며 동물권 개념 도입에 동의했고, 정세균 후보는 경기 일산에서 열린 ‘K 펫페어’를 찾아 동물병원 의료수가제 정착 등을 약속했다. 이재명 후보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개 식용 및 반려동물 매매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개 식용 금지 관련 법률의 공론화 필요성을 밝혔다.
지난달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반려견과 함께 한 프로필 사진을 올려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반려동물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인식을 보면 향후 반려동물 양육 환경 개선은 물론 관련 산업 발전도 기대된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SNS에 올린 반려견 곰이와 마루의 새끼 7마리 가운데 몸이 쇠약한 한 마리에게 직접 우유를 먹이는 사진을 놓고 야권 일각에서 독설을 내뱉어 논란이다. 자신의 경쟁자를 반려견 이름으로 지어 화풀이했다가 오히려 반려견에게 감동받아 생각을 바꾼 19세기 쇼펜하우어의 ‘인간보다 개가 낫다’는 말이 오늘 우리의 정치권과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