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은 누구인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1952년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용덕리 발막부락에서 빈농가정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4남 3녀에 조모까지 열 명의 대식구는 방 두 칸짜리 초가집에서 살았다. 당시 농촌의 아이들이 그랬듯 이낙연 전 대표도 어린 시절 학업보다 집안 농사를 거들었다.

학창시절엔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면서 학업에 열중했다. 그 결과 서울대 법과대학에 70학번으로 입학했다. 서울대 재학시절에도 가정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마땅히 서울에서 지낼 곳이 없던 그는 가정교사를 하던 집과 선배의 하숙집, 친구 자취방, 독서실 등을 전전했다.

억울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변호사의 꿈은 지독한 가난으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육군 카투사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한 그는 첫 직장으로 투자신탁을 선택했다.

이후 1979년 동아일보로 직장을 옮겨 21년 간 언론인으로 재직했다. 그는 주로 정치부와 국제부에서 근무하며 ‘외교·정치’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다.

기자생활 10년차 당시에는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가 정계입문을 처음 권유했지만 그는 국회가 아닌 도쿄특파원을 선택했다.

그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11년 후로 21세기가 시작된 2000년도부터다. 이 전 대표는 16대 총선에 출마해 전남 함평·영광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초선부터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맡았고, 절제되고 품격 있는 논평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대변인으로 노무현 후보를 도왔다. 당시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는 이낙연 대변인의 논평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널리 인용되는 말이다.

2017년 5월 31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낙점돼 문 대통령의 국정 파트너로서 내각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 1월 14일 민주당 당 대표와 종로구 출마를 위해 퇴임한 그는 2년 7개월의 재임하면서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로 기록됐다. 같은 해 국회로 복귀한 그는 서울 종로에서 압승을 거두고 민주당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21대 총선에서 여당 압승을 견인했다.

올해 3월 9일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 전 대표는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걸고, 5일 대통령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