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지금 우리는 어렸을 적 꿈꾸던 모습일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다. 경찰, 제빵사, 심리상담사, 사진가, 그중 하나는 선생님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아동센터에서 근로하며 내 이름 석 자보다 선생님으로 불렸다. 앞에는 별명, 뒤에는 선생님이 붙는다. 어찌 보면 꿈을 이룬 셈이다. 평생 선생님을 부르는 입장이었기에 처음에는 누군가가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이 어색했다. 동시에 선생님으로 불릴 때마다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아이들에게 무수한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단어에 맞게 잘 행동하고 있는지 도움이 되는 존재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나를 찾는다는 소리를 들으면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나 역시 아이들을 보며 배우는 것이 많다. 학교 끝나고 놀이터를 다녀와도 에너지가 남아돈다. 공부 시간을 제외하고 하염없이 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에너지가 가장 빛을 발하는 피구 시간에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이 하나같이 공을 향해 있다. 땀이 나도록 뛰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열정을 체육 시간에 뽐내는 아이도 있고 나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아이도 있고 의젓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 상상력이 풍부하고 긍정적인 아이도 있다. 그 나이에만 빛나는 마음을 보면 어린 시절이 떠올라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 노력한다. 순수한 열정은 나한테도 전달되는데 놀 때는 아이들의 친구처럼 놀아주고 공부할 때는 공부에 흥미를 갖도록 알려준다.

아이들의 검은 눈동자를 보면 맑다 못해 내 모습이 비친다.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이 마냥 부럽다. 하지만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스물셋이어도 어른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고 아직도 부족한데 말이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옛날 사람이라고 놀릴 때면 어른이 되는 건가 싶다. 성인이 되면 자유로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스무 살의 나는 실수투성이고 걱정으로 덮여있었다. 어렸을 적 그려왔던 모습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어른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많아도 어른 같지 않은 사람이 있듯이 어른은 상대적인 것 같다. 아이들의 눈에 내가 어른처럼 보이지만, 부모님은 아직 어린 애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 한 아이가 색종이로 접은 토끼를 본인 몸집만 한 쇼핑백에 한가득 접어왔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데 “선생님은 보라색 좋아하니까 보라색 토끼예요!”라며 나에게 건넸다. 얇고 얇은 색종이 한 장이 감동을 줬다. 나눔의 기쁨을 생각하며 접었을 아이의 마음이 기특하고 귀여웠다. 아이들은 어른과 다르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선물해준다.

토끼의 감동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쓰레기통에서 구겨진 토끼를 발견했을 때다. 그리고 버린 사람은 아이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나만 쉽게 감동한 것일까. 누군가에게 토끼가 낙서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만큼은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나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다. 아이들 속에서도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 것이고 세상은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단지 어른들로부터 웃음을 덜 잃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의 꿈이 흐려지지 않도록, 세상이 다정해지도록 내가 먼저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김유진 학생은 우석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