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거리 좁히기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삶은 관계이다. 소속, 누구의 부모, 직업 등, 여타 관계를 떠나 이름만으로 나를 설명하기 어렵다. 코로나로 인해 밀착해 있던 일, 사람, 상황 등 물리적 관계마저 제 대로 할 수 없는 시대에 돌입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대적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소통이 끊긴 것으로 보이나, 내면적 성장을 가져올 좋은 기회이다. 몇 년 전부터 음주가무 문화가 줄고 삼삼오오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커피숍 문화로 변했다. 마음을 터놓고 담소를 나누는 것이 얼마 만인가, 조짐이 따뜻하다. 정서적 갈증을 분출하는 풍경이다. 본격적으로 삶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한 것은 우리에게 그런 세상이 필요해서 온 것이라 본다.

각종 미디어가 세계의 많은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공유해준다. 각자의 능력, 존재감을 온라인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유명세, 근거 상관없이 확인된 바 없는 정보도 받아들인다. 모든 것을 드러내어 가며 개인이 특별해지는 시대로 변했다. 개의식의 공간에서 공동의식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세계적 협업의 시대로 진입했다. 우리가 지향하는 온전한 시대가 오는 조짐으로 보면 어떨까?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인도의 신비가 이고 철학자 이며 세계의 교사로 알려진 krishnamurti (1895~1986)의 책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 부분을 인용한다.

‘혁명, 개혁, 법률과 이데올로기에 의한 종교조차도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데 실패했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도 완전히 실패했다. 경쟁과 잔인성과 공포에 기초한 이 사회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가? 마음이 선해지고 새로워지고 천진天眞해져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이룩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 세계의 어떤 곳에서 살게 되었고, 또 어떤 문화에 속하게 되었든지 간에 세계 전반의 상태에 대해 전적인 책임이 각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만 그런 세계를 세울 수 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인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귀한 일인가? 자식을 때려죽이고 창밖으로 던지는 사건도 뉴스일 뿐인, 이 세상은 수시로 침략과 치욕을 당한 우리 각자의 두려움과 공격성의 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투적일 수밖에 없는 내 행동만큼, 세상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세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타인을 조종하고, 돈으로 명예를 사고파는 작금의 현실에서 상상도 안 된다. 이 시점에 가당키나 한가 싶지만 삼강오륜(三綱五倫)에서의 알맞은 관계가 절실해진다. 관계에서의 적당한 거리두기가 ‘존중의 품새’로 해석된다. 존중 속에는 관대와 자비가 포함되어 있다. 곧 사랑이다. 사랑이란 ‘사람이나 사물을 몹시 귀하고 아끼는 마음’이다. 심리학에서의 해석은 ‘사랑이란 상대가 피어나도록 온전한 여유 공간을 넓혀주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전 세계가 바이러스 공포를 공동운명처럼 겪으며 하나로 어우러지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단언한다. 에고가 줄고 집단지성, 인류의 지혜가 부상하는 중이라고. 원래 살았던 그 시대, 베풀고 나누기 좋아하는 서로 의존적인 시대로 돌아 갈 것이라고. 자신이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것으로부터 자유가 얻어진다. 내가 잘 사는 것은 자연과 주변의 덕이라는 감사가 회복될 때, 따뜻하고 안정된 세상이 당겨질 것이다. 그런 세상을 물려준다면 후손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