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Metaverse)

양현호 군산대 기획처장

양현호 군산대 기획처장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히로 프로타고니스트는 피자 배달을 하면서 임대 창고에서 생활한다. 그는 순탄하지 않은 현실의 일상생활을 마치면 창고로 돌아와 고글과 이어폰을 통해 ‘컴퓨터가 만들어 낸 전혀 다른 세계’로 빠져든다. 이 가상 세계를 전문용어로 ‘메타버스’라고 부른다. 현실에서의 삶은 초라하고 각박하지만 ‘메타버스’에서 그는 프리랜서 해커이자 최고의 검객으로 살아간다. 공상과학소설 ‘스노크래시(Snow Crash)’의 배경이 되는 설정이다.

이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1992년에 발표되었다. 비록 저자인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 외가와 친가 할아버지는 물론 부모까지 모두가 과학자인 집안에서 성장하였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의 기술 수준을 감안할 때 그의 뛰어난 과학적 상상력은 지금의 첨단 환경을 매우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어 놀랍기만 하다.

메타버스(Metaverse)는 어원상 초월적(Meta-) 세계 또는 우주(Universe)를 의미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첨단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시각과 청각 등 오감에 자극을 줌으로써 현실과는 별개의, 또는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나 경험을 만들어 주는 온라인 공간이다. 최근에 메타버스라는 용어 사용이 급격히 늘긴 하였지만 사실 이 개념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고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등 이전에 사용되던 개념들이 발전된 형태라고 이해하는 편이 맞다.

수년 전부터 ‘제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그 근간을 이루는 키워드는 고속통신망을 통한 ‘초연결사회’로,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고도의 정보기술이 바꾸게 될 가까운 미래 사회에 대한 많은 예측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변화를 바로 눈앞의 현실로 앞당긴 것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 코로나19로 촉발된 비대면 활동의 폭발적 증가였고, 그 중심에 메타버스가 자리하고 있다.

환경 변화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역시 산업계 쪽이다. 미국 게임업체 로블록스는 가상현실(VR) 게임 플랫폼을 개발해서 제공하고 있는데, 16세 미만 미국 청소년 55%가 가입하였고, 진성 사용자가 월 1억5000만 명에 이른다. 국내에서는 네이버의 자회사에서 제공하는 제페토에 전세계 2억 명 이상의 이용자가 가입되어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시절 메타버스를 통해 선거운동을 하였고 BTS는 신곡의 뮤직비디오를 발표하기도 하는 등 메타버스 플랫폼들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메타버스는 이제 단순하게 가상적 기술 환경을 이르는 키워드가 아니라 이미 현실세계에 스며들고 있다. 정부에서도 블록체인, 사물인터넷과 함께 적극 육성할 ICT융합 신산업으로 메타버스를 한국판뉴딜 2.0에 포함시켰다. 이에 발맞추어 전라북도도 메타버스를 ‘2차 전북형뉴딜’에 반영할 계획임을 발표하였다.

메타버스 환경에서 물리적 한계나 지역적 제약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바로 이 점이 우리 지역에서 메타버스를 특별히 눈여겨보아야 할 이유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상황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거론되던 전북지역의 불리한 여건 중 상당 부분이 메타버스 환경에서는 무의미해지거나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의 기회는 늘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오지만, 그 기회를 잡아서 활용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메타버스라는 큰 흐름이 우리 지역에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지는 않을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양현호 군산대 기획처장